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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노에서 버스를 타고 아레키파로 왔다. 버스를 타면서 "드디어 고산지대에서 벗어나겠구나" 라고 안심을 했지만, 해발고도 3800미터의 호숫가 도시에서 출발한 버스는 우선 고도를 올리며 4500미터 지점까지 올라가는 것이었다. 코파카바나를 갈 때 그렇게 고생했었지만, 버스 자체는 나쁘지 않았기에 이번에도 트란셀라의 버스를 탔고, 2층보다 사람이 적어 좀더 조용한 1층을 택했다. 사실 일부 버스는 1층칸의 경우 180도로 젖혀지는 풀플랫이 장착되어 있지만, 이 버스회사는 딱히 그렇지는 않더라.
버스는 우선 북쪽으로 향해 훌리아카 (Juliaca) 를 경유하고, 거기서 방향을 틀어서 서쪽으로 향했다. 볼거리가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황량한 고산지대의 모습은 아무데서나 보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열심히 두눈에 광활한 자연환경을 담았다.
버스는 6-7시간을 달려 겨우 아레키파에 도착했고. 이때는 이미 늦은 저녁이었다. 미니버스를 타고 들어갈까 싶었으나, 정신도 없고 해서 택시를 잡아서 아르마스 광장으로 갔다. 다른 페루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아레키파 또한 아르마스 광장이 관광의 중심이다. 내가 잡았던 숙소도 아르마스 광장 코앞에 있기도 하고. 택시를 타도 Plaza de Armas 라고 말하면 다들 알아듣기 때문에, 숙소 주소를 몰라서 택시를 못 타는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여전히 해발고도 2300미터로 한라산보다 높은 곳에 있지만, 그래도 이쯤 되면 고산지대의 괴로움을 벗어나기엔 충분하다.
알고보니 아레키파 아르마스 광장과 그 주변지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었다. 이쪽은 스페인의 남미 정복 시기에 완전히 갈아엎인 곳이라 남미 원주민 문화의 느낌은 거의 나지 않고 완전히 유럽풍이었지만,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인정받은 듯 하다. 실제로 아르마스 광장 중심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지역의 건물들에서 유럽의 감성이 많이 묻어나는 편이었다. 내가 묵었던 호스텔도 그 건물 중 하나에 위치해 있었는데,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평범한 호스텔이었다...
밤 열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라 식당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고, 나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숙소 직원에게 물어보니 그래도 열려있는 식당 몇 곳이 있다고 하더라. 얼른 가 보니 치킨을 파는 곳이다. 치킨을 한마리, 1/2마리, 1/4마리 등등으로 팔고 거기에 감자튀김, 샐러드 등을 곁들여서 내는 식당이었다. 특이하게도 페루 다른 지역에서 많이 마시는 쿠스케냐 맥주 말고도 아레키파 지역의 맥주인 아레키페냐를 함께 팔고 있었다. 어떤 지역을 가든 그 지역의 술을 한번쯤은 먹어보는 고집 덕에 아레키페냐를 한번 주문해 보았는데, 맛은 쿠스케냐가 훨씬 낫더라.
원래 계획은 일찍 자고 다음날 새벽부터 콜카 캐니언 투어를 떠나는 것이었다. 콜카 캐니언은 그 깊이가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보다 큰 것으로 유명하다.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피곤할 것 같아서 결국 포기를 했는데, 다음 날 하루 종일 장염으로 엄청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안 가길 잘한 선택이었다. 사실 깊이만 깊지 그 장엄함은 미국 것에 비교가 안 되기도 하고.
다음날 아침, 호스텔에서 제공하는 무슨 과일이 들어갔는지 모르겠는 주스를 마시고 출발했다. 이때부터 슬슬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지만, 우선 자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아르마스 광장 근처를 둘러보기로 했다.
마침 날씨도 아주 맑았고 정말 여행하기 참 좋다고 느꼈다. 그런데 이때부터 장염이 심하게 도져서, 더이상 뭔가를 할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중간 화장실이 보일 때마다 들어가서 해결해 주고, 그러다가도 더이상 못 버티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숙소로 복귀했다. 만약 콜카 캐니언을 가기로 했으면 얼마나 끔찍했을까 하는 안도감과 함께 잠시 숨을 골랐고, 점심도 대충 과자와 요거트로 해결했다.
우선 아르마스 광장 밖으로 나와 주변 지역을 조금 둘러보았다. 여러 힙한 가게들이 있는 거리가 눈에 보였다. 여기도 문화지구 내부에 있는 곳이다 보니 길거리 자체는 유럽풍이었다. 잠시 스타벅스에 들러서 앞으로 여행을 어떻게 할지 고민을 좀 하다가 (화장실도 이용하고) 나왔다. 우선 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던 상황이기 때문에, 급하게 앞으로 다닐 때 쓸 만한 배낭부터 사기로 했다.
다행히 아르마스 광장 남쪽으로 시장가가 펼쳐져 있었다. 시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물건을 팔고 있더라. 마침 배낭을 파는 곳이 하나 있어서, 80솔을 주고 하나 구입했다. 급하게 하나 산 것이지만 나름 튼튼해서 지금도 쓰고 있는 배낭이다. 비록 여러 사건이 겹쳐서 원래 계획대로 여행을 하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현지인들이 다니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아레키파 자체도 아름답지만, 아르마스 광장 북쪽에 있는 성 카탈리나 수도원 (Monarterio de Santa Catalina) 은 반드시 방문해야 할 곳 중 하나이다. 수도원 자체가 아름답기도 하지만 또 일몰을 보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기도 하다. 마침 배가 아팠던 것도 가시기 시작해서 수도원에 들어갔다. 45솔이라는 페루의 관광지 치고는 비싼 입장료를 가진 곳이지만, 콜카 캐니언도 포기했는데 여기는 꼭 가봐야지.
이곳은 스페인의 남미 정복 이후 16세기에 지어져서 400년 정도 실제로 수도원으로서의 역할을 하였고, 외부인의 출입이 엄금되었다가 1970년이 되어서야 관광객에게 개방된 곳이다. 그 덕에 내부에는 수도원으로 쓰였던 때의 유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여기는 일단 내부의 벽이 형형색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다워 실제로 많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도 사진이나 남길까 했지만 컨디션이 통 낫질 않아서 굳이 찍지는 않았다.
어느 지역은 붉은색으로 벽이 칠해져 있었던 반면, 어떤 부분은 푸른 벽이었다. 두 색의 강렬한 대조가 수도원을 더 아름답게 빛내고 있었다. 내부로 들어가서 방이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지, 무슨 물건들이 쓰이고 있었는지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금으로 된 성체현시대 (custodia) 를 포함해 그림 등의 예술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관도 있었다. 여기는 규모가 크지는 않아서 잠깐 둘러보고 나올 수 있었다.
수도원 내부에는 위로 올라가서 아레키파의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마침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하던 때라, 얼른 위로 올라가서 해가 지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보았다. 북서쪽 하늘에서 지는 해의 옆으로는 아레키파를 지켜주는 차차니 산과 엘 미스티 산의 웅장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내려와서 저녁을 해결하고 마지막으로 아레키파의 모습을 즐기기 위해 광장으로 나왔다. 가운데에서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었는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남미를 여행하다 아르마스 광장을 발견하면 꼭 가보자. 항상 재미있는 것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이때쯤 차라리 처음부터 페루만 여행하는 일정으로 짰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들었다. 페루여행 국민 코스인 리마-쿠스코-푸노-아레키파-이카로 갔으면 나았을텐데. 아무튼 나는 아웃 티켓이 칠레 산티아고이기 때문에 부랴부랴 칠레로 넘어가야 한다. 다음날은 하루종일 이동만 하는 날, 서둘러 칠레로 가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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