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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에서 고생을 하고 아무튼 푸노로 들어와서 좀 쉬어가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해가 지고 나서 도착한 푸노 터미널, 미리 알아본 호스텔 숙소로 가서 짐을 풀 수 있었다. 숙소 주인 아주머니는 작은 배낭 하나만 가지고 들어온 나를 보고 배낭 하나로만 여행을 다니고 있냐고 물어보았고, 내가 배낭을 도난당한 것을 알게 되고 진심으로 걱정을 해주었다. 터미널에 같이 가주겠다고도 했고 폴리스 리포트 작성도 도와주겠다고 했다. 사실 여행자 보험도 안 들고 와서 폴리스 리포트가 큰 도움이 될것 같지는 않아서 사양했지만, 아무튼 마음만으로도 힘이 됐다.

 

(내가 묵었을 때는 다른 이름이었는데 이름이 바뀐건지는 모르겠다)

 

저녁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일단 잠을 청한 다음, 우선 옷가지가 들어있는 배낭이 통째로 사라졌기 때문에 하루 동안은 따로 관광을 하지는 않고 급하게 옷과 필요한 물건들을 사러 다녀보기로 했다. 혹시나 해서 혼자 버스 터미널도 가보았지만 결국 배낭은 찾을 수 없었다. 뭐, 어쩔 수 없지. 그래도 가장 중요한 물건들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점에 감사하며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푸노의 길거리

 

날씨만큼은 기막히게 좋았던 그 날, 아무튼 정신을 조금이나마 회복했으니 우선 시내를 돌아다녀 보자. 여타 남미 도시답게 푸노도 시내 한복판에 아르마스 광장이 있고, 멀지 않은 곳에 시장이 있었다. 게다가 시장에서 흥정하는데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은 나같은 사람들을 위해 대형마트도 시내에 하나 있었다. 마트에 들러서 간단하게 입을 옷가지를 좀 구입하였다. 

 

푸노 중앙시장 (Mercado Central Puno)

 

전통시장도 돌아다녀봤으나, 쿠스코의 산페드로 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였다. 시장 구경하는 건 재밌긴 한데, 문제는 이 구경거리의 상당수는 식품류가 차지하고, 여행자인 내가 시장에서 식재료를 살 일은 거의 없다는 것.

 

점심으로 먹은 중국요리

 

중화요리가 발달한 페루답게 푸노에서도 수많은 중화요리 전문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치파 (Chifa) 라고 불리는 중국식 페루 요리, 남미 여행의 난이도를 그나마 낮춰주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페루 현지화가 되긴 했어도 기본적으로 중국 음식의 형태는 온전히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에게도 부담스럽지 않은 요리이다. 코카콜라를 같이 주문했는데 작은 병에 담겨서 나오는 감성이 또 입맛을 돋구었다. 

 

오후에는 숙소 근처 작은 광장에서 플리마켓이 열려 있었다. 내가 방문했던 즈음에는 페루 독립기념일을 앞두고 전국에서 다양한 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실제 독립기념일까지 페루에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축제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마을 광장의 플리마켓

 

저녁이 되니 다시 감기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아프다고 해도 금방 나으려면 잘 먹어야 한다. 뭐라도 먹기 위해서 근처 로컬 식당을 찾았다.

페루 가정식 저녁식사

 

외국인은 거의 찾지 않을 것 같은 로컬 식당. 보통 이런 곳에 가면 오늘의 메뉴 (Menú del dia) 라는 허름한 코스요리(?)를 주문할 수 있다. 애피타이저로 수프가 나오고, 그다음 메인요리가 나온 후 차까지 제공되는 형태. 수프에는 별다른 재료가 들어가있지는 않고 고기 몇 조각과 감자, 파스타 등의 탄수화물이 조금 들어있는 형태. 국물은 향신료가 조금 들어있어서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고산지대의 추운 저녁 몸을 따뜻하게 데우기에는 더할나위 없다. 메인 요리로 나온 생선 요리는 트루차 (Trucha)로, 티티카카 호에서 잡히는 송어의 일종. 남미 아니랄까봐 밥과 감자가 같이 나온다. 그 후 제공된 차는 색이 굉장히 진했지만 커피는 아니었다. 이렇게 먹고 단돈 7솔 (2달러 정도)만 나왔으니, 역시 남미 여행하는 맛이 난다.

 

다음날은 푸노에서의 정비를 끝나고 아레키파로 향하는 날. 아레키파 행 버스는 오후에 있기 때문에 오전에는 티티카카 호의 갈대 섬으로 유명한 우로스 섬을 반일투어로 신청해서 가보기로 했다. 투어 신청은 미리 숙소 리셉션을 통해 바로 해결했다. 택시가 와서 투어 신청자들을 태우고 선착장으로 보내서 같이 배를 태우는 시스템이었다.

 

티티카카 호 선착장

 

선박 내부

이때부터는 가이드가 동행했는데, 티티카카 호의 간단한 역사와 함께 현지 원주민 언어인 아이마라어 인삿말을 알려줬다. 실제로 우로스 섬에 사는 사람들은 스페인인들이 남미에 도래하기 훨씬 이전부터 살았던 원주민이다.  

 

티티카카 호의 갈대섬들

 

정말 갈대섬들이 호수 중간에 있었다. 모두 호수 한복판에 갈대를 이어 만든 인공섬이다. 알고 보니 섬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섬들이 있었고 꽤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섬의 전경

 

한 2-30분쯤 갔을까, 우리의 목적지인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섬 입구에는 갈대를 엮어서 아치 모양으로 장식이 되어 있었다. 마찬가지로 갈대 집들이 몇채 보였다.

작은 섬의 아르마스 광장(?)

 

수많은 섬 중 한 곳에 내린 우리는 마찬가지로 갈대를 엮어 만든 벤치(?)에 걸터앉아 가이드에게 설명을 좀더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이 갈대 섬을 어떻게 만들었나에 대해 설명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침략자들을 피해 호수 위에 섬을 만든 원주민들이 터전을 잡고 갈대를 쌓았다고 했었나. 갈대가 썩어서 흙이 되면 그 위에 갈대를 더 쌓아서 섬을 유지보수 하는 식으로 섬이 유지되는 모양.

 

섬의 원주민들

 

전통의상을 입은 현지인들이 직접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시범도 보여주고, 여러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이 이후에는 각자 작은 오두막으로 들어가서 공예품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물건들을 팔려는 모습이 조금 안쓰럽기도 했고 실제로 꽤 재미있어 보이는 기념품들이 많이 있었는데, 돈을 잃어버린 직후여서 그냥 참고 나왔다. 아무래도 지금은 관광객들에게 받는 돈이 이들의 주 수입원 중 하나인 모양이다.

 

짧은 여정을 끝낸 후 옆에 있는 다른 섬으로 이동했다. 마찬가지로 갈대를 엮어 만든 배를 타고 이동했는데, 사실 뭐 별건 아니고 옆에 모터보트가 따로 달려있었더라. 투어비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배 이용료를 지불하고 다른 섬으로 이동했다.

 

이 섬에서는 따로 특별한 것을 하지는 않았고, 간단한 식사 장소와 화장실이 준비되어 있었다. 같은 배를 타고 온 사람들 중에 식사를 하는 사람은 없었고, 나는 유료인 화장실을 이용한 후에 몸을 녹이기 위해 커피 한잔을 했다. 관광지라고 상당히 비싼 요금을 받았다.

 

치차론

시내로 돌아온 후에 점심으로 치차론을 파는 가게에 갔다. 돼지고기를 껍질과 뼈째로 기름에 튀긴 요리. 흔히 한국에서 치차론이라 하면 돼지 껍질을 튀긴 요리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서 먹었던 치차론은 고기도 꽤 포함되어 있었다.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간단하게 점심 한끼를 하기에 괜찮았던 집. 저 바닥에 깔려있는 옥수수는 알이 다른 곳에서 보는 것보다 두 배는 커 보였는데, 특유의 향이 거의 없다보니 옥수수를 좋아하지 않는 부담없이 먹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남미 답게 감자가 나오고, 뒤에는 양파 샐러드가 좀 있었다. 이 치차론은 왠지 가장 기억에 남는 페루 음식인데, 고기를 튀겨야 하다보니 집에서 만들기에는 엄두가 나질 않는다...

식당 내부

 

내부는 사실 식당보다는 술집에 가까웠고, 실제로 저녁에는 술집으로 쓰이는 모양. 가격도 10솔 조금 넘아서 꽤 저렴하게 한끼를 해결할 수 있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와보고 싶은 집.

페루 국기를 파는 노점상

 

푸노 터미널

 

푸노의 일정을 마치고 아레키파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에 돌아왔다. 터미널 외벽에 위팔라 (Wiphala) 라고 불리는 무지개색의 정사각형 타일이 장식되어 있었다. 이 문양은 페루나 볼리비아 등지에서 흔하게 볼수 있는 녀석이고, 각각의 색은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

 

코카 마테

 

드디어 고산지대를 벗어나 본다. 마지막으로 코카잎 차로 몸을 데우고 아레키파로 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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