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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스코에 머물면서 안데스 산맥과 잉카 문명의 장관을 보고 나서, 이제는 쿠스코를 떠날 시간이 되었다. 대부분의 한국인 여행자들이 그렇듯, 쿠스코에서 버스를 타고 볼리비아로 넘어가는 여정을 택했다. 바로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즈로 가는 대신 중간에 티티카카 호수의 전경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코파카바나를 거쳐가는 일정으로.

 

쿠스코 버스터미널에서는 볼리비아로 가는 버스가 여럿 있다. 목적지 별로 표를 판매하는 한국과는 달리, 여러 남미 국가들은 터미널에 버스 회사별로 창구가 따로 있어서 버스회사를 택하고 해당 목적지에 가는지 확인해야 한다. 여러 버스회사들 중 나는 트란셀라 (Transzela) 사의 창구에서 예매를 했다. 일반 버스를 타는 대신 쿠스코에서 라파즈까지 관광지들에서 내렸다 탈 수 있는 페루홉이나 볼리비아홉 등의 선택지도 있지만, 이번 여행은 일정이 타이트했기 때문에 바로 코파카바나로 들어가는 걸로.

 

쿠스코 버스 터미널

 

장거리 노선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버스는 좌석을 뒤로 많이 젖힐 수 있다. 일부 고급 버스는 180도로 완전히 젖힐 수 있어서 상대적으로 편하게 탑승할 수 있는데, 내가 탄 버스는 그 정도는 아니어서 160도 정도 젖혀졌다. 아주 편하지는 않지만 적당했다. 80솔 정도의 가격이었으며, 쿠스코에서 코파카바나까지 바로 가는 노선은 아니었고 푸노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여기에 터미널 한구석에 이용료를 내는 창구에서 돈을 내야 하는 건 덤. 소정의 금액을 지불하면 티켓을 주는데, 버스터미널에서 탑승장으로 나갈 때 그 티켓을 제시해야 한다.

 

밤버스를 타고 다음날 새벽 푸노 터미널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조금씩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버스를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기사에게 짐을 찾으려고 했는데 짐을 굳이 안 찾아다도 된다나 뭐라나. 그래서 짐을 버스에 놔두고 우선 터미널 대합실로 들어갔다. 해발고도 3800미터의 높은 곳이다 보니 꽤나 쌀쌀했고,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의자에서 덜덜 떨고 있으니 어떤 사람이 담요를 가져와서 덮고 있으라고 하더라. 매점에서 커피 마테 하나를 사서 마시면서 버텼다.

 

푸노 버스 터미널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버스 출발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버스를 어디서 탈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안 나오는 것이었다. 결국 버스회사 창구에 가서 물어봤는데 이미 떠났단다. 순간 어안이벙벙해졌다. 분명 버스를 안 놓치려고 안내방송도 최대한 들으려고 했고 버스 승강장 쪽에서도 기웃거렸는데, 왜 버스를 놓친 것인가. 분하면서도 춥기도 해서 터미널 한구석에 주저앉아 플랜 비를 찾아보았다. 여태 여러 나라들을 여행해 봤는데, 이렇게 억울하게 버스를 놓친 적은 처음이었다.

 

얼마나 됐을까, 회사 직원이 나를 찾더니 코파카바나까지 갈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알고보니 나 말고도 버스를 놓친 사람들이 여럿 있었던 것. 버스회사 직원은 우선 내가 탔던 버스 (터미널 주차장에 그대로 서있었다) 에 데려갔다. 말도 안되게 내 배낭이 거기에 그대로 있었다. 즉, 볼리비아로 그냥 가면 배낭은 따라가지 못했던 것. 배낭을 챙기고 직원을 따라 10분 넘게 걸었다. 거기에는 로컬 버스들이 다니는 미니버스 터미널이 있었다. Terminal Zonal Sur Puno 라는 이름이었다.

 

푸노 버스 터미널

 

로컬 버스 터미널 입구

 

여기서 미니버스를 타고 국경으로 가서 출국과 입국심사를 받고 최종 목적지까지 가는 형태였다. 미니버스는 열댓 명 정도가 타는 작은 규모였고, 사람을 꽉꽉 채우면 출발하는 형태이다 보니 내부는 좀 불편했다. 아무튼 버스회사의 도움으로 교통편을 해결할 수는 있었다. 대충 이런 루트로 가면 된다.

 

푸노에서 코파카바나 로컬버스로 가는 법

 

1. 푸노 로컬 버스 터미널에서 Yunguyo 행 미니버스를 탑승. 2023년 7월 기준으로 버스비가 15솔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 버스를 타면 국경 마을에서 한번 내려주고 거기서 같은 버스를 타고 국경 앞까지 갈 수도 있다. 국경 지역은 Kasani 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2. 페루 출국심사, 볼리비아 입국심사를 하고 거기서 코파카바나 국경으로 가는 미니버스를 탄다. 거리가 꽤 가깝긴 한데 걸어가기에는 좀 멀다.

 

페루-볼리비아 국경

그런데 아뿔싸, 미니버스에 내리고 보니까 내 지갑과 배낭이 보이질 않았다. 지갑은 내 자켓 주머니에 넣어놨었는데 사라졌고, 배낭은 분명 미니버스를 탈 때 위에 실었는데 사라진 것이다. 다행히 여권 등 정말 중요한 물건들은 모두 소지하고 있어었지만, 배낭에는 옷가지 등등 여행을 하는 데 필요한 물건들이 있었기 때문에 무척 난감한 상황. 달러도 그 배낭에 들어있었고.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 일단 버스회사 직원의 연락처를 받고 국경을 넘었다.

 

돈도 없는데 카드가 들어있는 지갑도 없어서 ATM에서 현금을 뽑을 수도 없어서 볼리비아 여행이 사실상 쉽지 않은 상황. 게다가 푸노에서부터 있었던 감기기운이 제대로 와서 도저히 어디를 갈 상황도 안되었다. 우선 예약해 놓은 숙소에 들어갔는데. 점심시간 쯤 체크인을 해서 다음날 아침까지 잠만 잤던 것 같다. 숙소 주인은 아주 친절했다. 아직 현금 사회인 볼리비아였지만, 그래도 호의를 베풀어주어서 웃돈을 주고 카드로 숙박비를 지불할 수 있었다. 그나마 카드결제 단말기가 있는 곳에서는 애플페이를 이용해서 결제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웨스턴유니언을 이용해서 은행을 통해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시도해 보았는데, 뭔가 문제가 있었는지 그것도 잘 되지 않더라. 몸살이 가시지도 않고 볼리비아 돈을 구할 수도 없어서 결국 좀더 카드결제 인프라가 잘돼있는 페루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버스표 결제도 현금만 받는 곳이 대부분이어서, 겨우 카드결제 되는 회사를 찾아서 표를 구입했다. 점심시간이었는데 저녁이 되어서야 출발하는 표를 샀기에, 아픈 몸을 이끌고 동네를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칼바리오 언덕 올라가는 길

 

코파카바나에는 티티카카 호를 전망할 수 있는 아름다운 언덕이 있다. 칼바리오 언덕 (Cerro Calvario) 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Calvario'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단어인 '갈보리'와 같은 단어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에게는 좀 익숙할 지도 모르겠는데,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처형된 언덕의 이름이다. 실제로 이 언덕도 올라가는 길 곳곳에 십자가가 배치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십자가 주변에 작은 돌탑을 쌓아서 예수가 2천년 전 십자가에서 부활하여 사람들의 죄를 가지고 승천하신 것을 기리는 모양이었다.

 

칼바리오 언덕 정상

언덕 정상에서 본 티티카카 호는 장관이었다. 수많은 배과 호숫가 바로 앞에 형성된 포장마차 거리, 거기에 형형색색의 건물까지. 한참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호숫가의 포장마차 거리

 

호숫가로 내려가보기도 했다. 이쪽은 수많은 관광객들이 티티카카 호수에서 자라는 토종 물고기인 뜨루차 (Trucha) 를 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잠시 걷다가 다시 시내 광장으로 가서 버스를 기다렸다.

 

볼리비아-페루 국경

 

페루 국경으로 들어가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볼리비아를 출국하기 전에 미리 터미널에서 이미그레이션 정보를 작성하고, 국경에서는 이걸 보여주기만 하면 되었다. 페루 측 국경에서는 여권만 보여주었고, 특별히 질문을 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다시 100km 정도를 달려 푸노에 도착. 지갑이라도 찾을 수 있나 해서 버스회사 창구에 물어봤는데, 놀랍게도 내 지갑이 정말로 거기 있었다. 아무래도 버스에서 빠뜨렸다 보다. 지갑이 있으니 현금 확보가 쉬워져서 아무튼 여행을 끝낼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여기서 나는 동선을 크게 수정해야 했다. 원래 볼리비아에서 우유니를 찍고 칠레의 아타카마를 여행한 후 산티아고에서 출국하는 일정이었는데, 볼리비아 일정이 끝나버렸기 때문. 푸노에서 칠레로 넘어가려고 하니 사실상 유일한 방법은 푸노에서 아레키파를 찍고 타크나로 가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차라리 칠레를 아예 안 가고 리마로 아웃하면 딱 페루 주요 도시들을 한 바퀴 도는 이상적인 일정이었을텐데, 이미 비행기표를 사 버려서 변경이 쉽지 않았다. 반쪽짜리 여행이 되어버렸지만 아무튼 끝낼 수라도 있으니.

수정된 동선

 

이렇게 뜻하지 않게 푸노를 여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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