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전날 열심히 마추픽추와 와이나픽추를 돌아다니느라 체력을 다 빼버린 나. 하지만 다음날도 강행군이다. 새벽 4시에 기상 후 체크아웃까지 마쳤다. 우만따이 호수에 가기 위해서이다. 쿠스코에서는 주변지역 곳곳으로 갈 수 있는 투어 상품이 있다. 마추픽추를 제외하고 가장 유명한 것은 무지개 산으로 유명한 비니쿤카일 것. 하지만 비니쿤카와 같은 무지개 산은 사실 페루 말고도 중국의 칠채산 등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좀더 남미의 분위기가 짙게 나는 우만따이 호수로 결정. (사실 칠채산 안 가 봤다)
사실 우만따이 호수는 많은 여행자들에게는 굳이 갈 필요가 없는 곳이긴 하다. 보통 페루를 여행하면 많이 가는 와라즈의 파론 호수나 69 호수도 빙하가 녹아서 만들어진 아름다운 호수이고, 하다 못해 빙하 구경은 파타고니아를 가면 실컷 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나는 와라즈도 가지 않고 파타고니아도 가지 않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산 속의 아름다운 호수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튼 미리 신청해둔 투어가 있었다. 성계 투어를 신청했던 여행사와는 다른 곳에서 투어를 신청했었다. 처음에 65솔을 불렀는데 한번 할인해달라고 찔러보니 60솔로 깎아 주더라. 여기는 호수 입장료 (20솔)가 불포함이다. 투어 내용은 아침식사 후 호수를 둘러보고 내려와서 점심식사를 하는 것이 전부이다. 아침과 점심은 모예파타 (Mollepata)라는 곳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하게 먹는 느낌. 이 호수는 쿠스코에서 마추픽추까지 3박4일 간 도보로 여행하는 살칸타이 트레킹의 경유지이기도 하다.
식사는 간단한 뷔페식으로 제공되었다. 아침식사인 만큼 메뉴가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먹을 것들이 꽤 있었다. 고산지대인 만큼 테이블에는 차를 우려서 마실 수 있도록 코카잎도 놓여 있었다. 이쯤에서 호수 입장료를 걷는데, 하필 그때 페루 돈이 다 떨어져서 달러로 지불했다. 1달러당 3솔이라는 대놓고 바가지 씌우는 환율이었는데, 뭐 별 수 있나. 미리 준비를 해가지 못했던 내 자신을 탓하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달러를 지불하였다.
아침식사 후 우리를 실은 차량은 큰길을 빠져나가 우만따이 호수로 넘어가는 비포장도로를 달리기 시작한다. 산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나있는 길에다가 덜컹거리기도 하니 차 안에 있는 것부터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중간중간 뻥 뚫려서 산골짜기가 들여다보이는 부분에서 멀미를 달래곤 하였다. 특히 여기는 차 두 대가 나란히 있기도 벅찬 아주 좁은 도로여서, 한번은 앞의 차가 고장이라도 났는지 한참을 멈춰있다 가더라.
어느 지점부터 차가 더이상 다니지 못하고,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한다. 동행한 가이드가 하이킹 코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대충 3단계로 루트가 나뉘는데, 완만한 경사로부터 시작해서 45도의 경사, 그 다음 60도의 경사가 나타난다나 뭐라나. 대충 나무막대기로 된 등산스틱을 쥐어주면서 하이킹을 하게 한다.
중간에 트레킹 구간을 벗어나 호수로 향하는 등산로(?)로 빠져나갔다.
호수로 가는 등산로의 초입은 이렇게 생겼다. 경사가 가팔라 보이지 않는다고?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초반에는 경사가 정말로 완만하기 때문. 하지만 여기는 해발 3800미터 지점. 아무리 경사가 가팔라도 고지대에서 등산을 하는 것은 미경험자에게는 쉽지 않기 때문에,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다행히(?) 등산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말을 타고 호수 정상까지 갈 수 있다.
고산지대의 특성 때문이었나, 낮은 초목이 많이 자라고 있다. 그 와중에 꽃도 피어 있다. 이런 혹독한 환경에서도 생명체들은 나름대로 적응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완만한 경사가 끝나고 가파른 구간이 시작되었다. 그새 해발 4천미터가 넘는 지점까지 와버렸다. 뒤를 돌아보니 시작점이 까마득하게 멀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본격적인 고생길은 여기부터 시작이기 때문. 산소가 부족한 고지대이다 보니 굉장히 숨이 차다. 몇 걸음 걸고 쉬어줘야 한다.
얼마나 걸었을까, 경사는 더욱 가팔라지고 온몸이 땀으로 젖기 시작했다. 등산스틱에 몸을 의지하며 겨우겨우 걸어 올라간다. 안 그래도 전날 와이나픽추를 오르느라 땀 좀 뺐는데, 이틀 연속으로 등산을 하니까 몸이 남아나질 않는다. 그래도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마지막 힘까지 빼서 올라보자. 열 걸음 걷고 1분씩 쉬어가면서 천천히 올라갔다.
올라가다 보면 이렇게 음식과 물을 파는 매대가 나타난다. 정상에 다 올랐다는 뜻. 나는 미리 마실 것을 준비해서 왔기 때문에 굳이 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물건들을 어떻게 실어 올라왔을지 참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등산로를 다 오르니 산 속에 숨어있던 호수가 그제서야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 너무 아름답다. 호수가 반투명한 청록색을 띠고 있었는데, 흔히 볼 수 있는 호수의 색이 아니라 더욱 신비로웠다. 빙하가 녹아서 호수가 되어가는 모습 자체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하늘도 너무 맑고 호수도 푸르른 아름다운 광경이다. 여기는 약 해발 4200미터 지점에 위치해 있는데, 역시 아름다운 광경은 보러 가는 것부터가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넋 놓고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가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가이드에 따르면 원래 우만따이 (Humantay)라는 이름은 '머리'를 뜻하는 '우만'이라는 단어와 '신'을 뜻하는 '따이'라는 단어를 합한 단어인데, 사실 원래 이름은 '와만따이'라고 하는데. '매' (falcon)를 뜻하는 단어라고 했던 것 같은데...
호수 구경을 마치고 내려가는 길. 해발 3800미터의 시작지점이 어느새 까마득하게 멀리 보였다. 그래도 내려가는 건 훨씬 쉽긴 했다. 몇몇 사람들은 경보를 하다시피 성큼성큼 내려가고 있었다.
아침을 먹었던 곳과 같은 곳으로 돌아가서 점심식사를 하고 해가 질 때쯤 되어 쿠스코로 돌아올 수 있었다. 밤 버스를 타고 볼리비아로 넘어가야 했기 때문에 버스를 탈 시간까지 쿠스코 곳곳을 마저 돌아보기로 했다.
버스가 내려준 아르마스 광장에서부터 시작해서 쿠스코 곳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성당 앞에서 사람들이 잔뜩 바람개비 같은 것을 들고 있는데, 현지인이 아니다 보니 무슨 일이 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나중에는 바람개비 말고도 반짝반짝 빛나는 풍선까지 들고 있다. 이런 예상치 못한 이벤트를 구경하는 것은 좋은데, 배경지식이 전혀 없다 보니 무엇에 관한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점은 참 아쉽다.
잉카의 기술력을 볼 수 있는 12각형의 돌. 이것도 쿠스코의 명물인데 계속 잊고 있다가 떠날 시간이 다 되어서야 볼 수 있었다. 12각돌 뿐만 아니라 이 근처에는 명물이 하나 더 있는데...
12각돌과 아주 가까운 곳에 사람들이 항상 북적이는 기념품점이 있다. 여기는 온갖 물건들을 팔고 있는데, 가격이 정찰제이고 합리적이어서 바가지 쓸 위험 없이 기념품을 구할 수 있다. 페루를 떠나기 전이라면 페루 돈을 털어버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나는 여기서 7개에 5솔인가 하던 알파카 열쇠고리와 35솔인가 하던 베이비 알파카 모자를 하나 샀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지 히브리어가 쓰여있다. 이전에 다른 곳에서 쿠스코라고 써있는 배낭을 샀었는데, 여기서 샀으면 더 저렴했을까 궁금하다.
저녁으로 식당 한 군데에 들어가서 로모 살타도를 주문했다. 이 식당은 페루의 전통 공연도 볼 수 있는 나름 괜찮은 곳이었다. 전통 음악을 틀어놓고 있다가 때때로 사람들이 나와서 전통 무용을 보여주고 들어가는 느낌. 음식 값도 저렴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 시점에서 입맛이 급격하게 떨어져서,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는 채로 배만 채우기 위해 먹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때만 해도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있었다.
'여행 > 남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페루] 푸노에서의 휴식과 호수의 갈대 섬들 (2) | 2023.12.12 |
---|---|
[페루-볼리비아] 쿠스코 - 푸노 - 코파카바나, 가방도 털리고 멘탈도 털린 볼리비아 (5) | 2023.11.09 |
[페루] 말로만 듣던 마추픽추와 와이나픽추를 드디어 방문하다 (1) | 2023.10.08 |
[페루] 잉카 제국의 자취를 찾아 성스러운 계곡으로 (1) | 2023.09.29 |
[페루] 쿠스코 행 비행기와 볼리비아 비자 신청 (0) | 2023.09.18 |
- Total
- Today
- Yesterday
- 시라즈
- 중국
- 실크로드
- 실크로드여행
- 터키
- 이란
- 우즈베키스탄
- 시애틀
- 남미
- 시먼딩
- 영국여행
- 미국비자
- 미국유학준비
- 예스진지
- 미국여행
- 대만
- 영국
- 미국
- 타이베이
- 국경
- 실크로드 여행
- 키르기스스탄
- 이란여행
- 터키여행
- 대만여행
- 여행
- 페루
- 미얀마여행
- 미얀마
- 세계여행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