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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1. 16. - 18. 터키 가지안테프

 

(사실 가지안테프 말고 그 옆의 샨르우르파에 갈걸 후회했다. 가지안테프도 나쁘지 않은데 볼거리는 샨르우르파 쪽이 더 많다. 종교적 성지이기도 하고. 다음에 샨르우르파에 갈 일이 있다면 물고기 호수와 괴베클리테페에 한번 가보고 싶다.)

 

가지안테프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나는 시내로 버스를 잘못 타는 김에 이상한데 내려버렸고, 한참을 헤매다가 결국 택시를 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버스를 잘못 내린 미지의 땅에서 호텔 앞까지는 30리라, 6000원 가까이 되는 거금이었다. 물가 싼 나라에만 있다보니 터키의 상대적으로 비싼 택시비가 적응이 안됐다. 아침부터 진을 다 뺀지라 숙소에서 한참을 쉬었다.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데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케밥집에 갔는데, 어떤 시리아 남자 두명이 나한테 합석을 하자고 하는 것이었다. 그 시리아 남자들은 나에게 '초르바'라고 불리는 수프 하나를 주문해 주었고, 수프는 빵과 같이 먹으니까 나름 맛있었다. 시리아 남자 둘은 일이 있다고 먼저 갔는데, 그 도둑놈들이 돈을 안 내고 튀었는지 나는 얼떨결에 삼인분의 수프를 결제해버렸다. 아주 비싼 건 아니었는데 어쨌든 기분이 매우 나빴다. 여튼, 가지안테프는 시리아 국경과 정말 가까운 곳이라서 시리아 출신 난민들이 아주 많다나 뭐라나... 비도 오고 딱히 뭔가를 할 상황도 아니어서 숙소에서 비가 그칠때까지 쉬었다.

 

비가 그치고 가보기로 한 곳은 가지안테프에서 가장 유명한 제우그마 모자이크 박물관이다. 옛날옛적에 사람들이 돌을 붙여서 모자이크를 만든 것을 전시해놓은 것이다. 모자이크는 기하학적인 문양부터 시작해서 실제 사물이나 사람의 모습을 묘사한 것도 있었다.

 

모자이크 박물관 가는 길. 원래 철길이 있던 자리인데 공사중인지 다 걷혀있었다.

박물관 입장료가 저렴하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2020년 초 기준 30리라라고 한다. 내가 터키에 갔을 때는 리라화가 한번 폭락하고 다시 폭락 전으로 회복하던 시기라서, 리라화 폭락 때 정부가 박물관 입장료를 대폭 인상한 것이 그대로 반영되어 가난한 여행자로서 나름 많은 돈을 내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전국의 박물관들 무료로 입장 가능한 뮈제카르트 안 사고 여행하게 되었다. 어쨌든 모자이크는 나름 정교하고 아름다웠으며, 전시실 규모가 컸다. 실제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한 것이다 보니 곳곳에 유실된 부분이 많이 있었다.

 

모자이크
모자이크

밑의 사진은 그 유명한 집시 소녀.... 가 아니라 모자이크에서 집시소녀가 발견된 위치를 모형으로 나타낸 것이다. 사실 처음에 이게 집시소녀 원본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원본은 따로 비밀스럽고 어두운 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거기까지는 가지도 못했는데, 비가 그친 다음 너무 늦게 박물관에 가는 바람에 다 보지도 못하고 박물관 문 닫는 시간이 돼버렸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박물관을 나왔다.

 

집시 소녀 모형

하루종일 뭔가 안 풀리는 날이라서 그냥 저녁만 때우고 들어가기로 했다. 저녁은 'Kadir Kebap ve Lahmacun Salonu'라는 곳에서 케밥을 먹었는데, 기분이 안 좋았던 탓에 사진도 안 찍었다. 돌아가는 길에 리쿼샵을 들러서 맥주 두 캔을 사가지고 호텔에 가서 먹었다.

 

가지안테프 어딘가

다행히 다음날은 날씨가 맑았다. 일단 시장을 한번 둘러보기로 했다. 가지안테프 구시가지는 나름 오래되고 전통있다는 느낌을 많이 주었다. 구시가지 골목 중에는 구리 장인 시장 (Bakırcılar çarşısı)이라는 곳이 있어서, 여기서 동이나 은으로 된 제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도 있다. 배낭에 기념품을 넣을 공간이 없었던 나는 물론 눈으로만 즐겼다. 시장의 구리와 은으로 만든 찻잔이 내 눈을 황홀하게 해주었고, 가지안테프 시내 곳곳에 있는 바클라바 가게는 군침을 돌게 해주었다. 

 

가지안테프 구시가지
구리와 은제 찻잔

가지안테프는 피스타치오로 만든 바클라바가 아주 유명하다. 심지어 피스타치오를 의미하는 터키어 (antep fıstığı)에 가지안테프의 도시 이름 (Antep - Gaziantep의 옛 이름)이 들어갈 정도이니 말이다. 가게마다 가격 차이가 있긴 했지만,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접할 수 있는 패스트리 느낌의 바클라바는 1kg에 52리라 정도의 가격에 팔고 있었다. 만원 정도면 그래도 한번 시도해 볼만하다. 가지안테프 시내에서 Güllüoğlu라는 이름의 바클라바 가게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전부 이스탄불의 유명한 바클라바집 카라쾨이 귈리올루 (Karaköy Güllüoğlu)의 짝퉁이라고 한다.

 

바클라바 가게

바클라바는 버터 잔뜩 넣고 반죽한 패스트리를 시럽에 적셔 만들어서, 정말 정말 달고 기름지고 칼로리가 높다. 나름 중독성 있어서 하나하나 먹다 보면 금방 사라지는 게 문제.

 

포장해온 바클라바. 가지안테프를 떠나기 전에 다 먹음.

일단 점심 먹기 전에 가지안테프 성에 올라가보기로 했다. 입장료는 동전 몇 개 수준으로,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입장료를 내고 조금 올라간 다음, 성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그 입구에서는 터키의 자랑스런 역사가 전시되어 있었다. 물론 아타튀르크 치켜세우기도 포함. 그러고 보니 내가 갔던 나라들 중에는 키르기스스탄을 빼면 전부 초대 지도자를 국부로써 극진히 모시고 있었다. 중국의 모택동,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람 카리모프, 아제르바이잔의 하이데르 알리예프, 이란의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모두 사실상 독재국가인 것도 비슷하다)

 

가지안테프 성 입구
성을 올려다본 모습
성 올라가는 길

성에 다 올라가면 뭔가 건축물이 더 있었던 터를 볼 수 있다. 유물이 전시되어 있던 건 아니고 그냥 목욕탕으로 쓰였던 곳 정도 봤던 것 같다. 그냥 시내 전망을 내려다볼 수 있는 게 다였다. 위에는 카페도 있었는데, 거기서 뭘 먹진 않고 다시 내려왔다.

 

가지안테프 성 위
가지안테프 성 위

다시 시장 쪽으로 내려가보았다. 신발을 잔뜩 만들어서 매달아놓은 게 눈에 띄었다. 이번에는 시내에 있는 음식점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여기는 레스토랑을 하면서 바클라바집을 겸하는 곳이었는데, 바클라바가 시내 다른 곳에 비해서 더 비쌌던 걸로 기억한다. 여태까지 아침식사를 제외한 터키의 모든 끼니를 케밥으로 떼웠던 지라, 이번에는 케밥이 아닌 걸 먹기 위해 라흐마준을 주문했다. 

 

신발을 늘여놓았다.

라흐마준은 겉보기에는 피자 비슷하게 생겼지만, 치즈가 들어가있지는 않고 좀더 맛이 투박하다고 해야 하나, 여튼 고급진 맛은 아니었다. 실제로 라흐마준은 비싼 음식이 아니기도 하고, 하나만 먹으면 양이 안 차서 최소 두개는 먹어줘야 한다.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 않다. 라흐마준이 나오고, 어떻게 먹는지 몰라서 쩔쩔매고 있더니 옆의 현지인이 그걸 보고 먹는 법을 알려줬다. 정확한 방법은 기억이 안 나는데 골자는 돌돌 말아서 롤 모양으로 만든 뒤 먹는 것이었다. 같이 주문한 아이란과 같이 먹으니 맛있었다.

 

라흐마준

 

구시가지의 골목

사람이 몰려 있어서 뭔가 하고 봤는데, 어떤 아저씨가 사람들에게 흙빛 음료를 나눠주고 있었다. 나도 궁금해서 얼쩡거리니까 나에게도 한 잔을 따라주었다. 퉤퉤, 엄청 쓴맛이 났다. 뭘로 만든 건지는 모르겠다. 실제로 뱉지는 않고 다 마시긴 했는데, 다시는 마시지 않을 것 같다.

2024.2.4 업데이트: 이 음료는 메얀 셰르베티 (Meyan şerbeti)라고 불리는, 감초를 주재료로 해서 만든 음료라고 한다. 흔히 생각하는 감초의 향이 아니라서 특이하다.

 

음료를 나눠주던 아저씨. 뒤에 시미트 파는 아저씨도 보인다.

 

형형색색의 도자기 제품

저녁을 먹을 데를 마땅히 찾지 못하고, 결국 시리아인에게 밥값 떼먹힌 곳으로 다시 갔다. 나름 맛있었던 곳이었기 때문이지. 이번에는 닭고기 케밥을 주문했다. 빵이 따로 나오지는 않고, 케밥 위에 올려져 나온 게 전부였다. 내가 알던 가지안테프 인심이 아닌데 말이야... 닭고기를 먹는데 냥이 한 마리가 알짱알짱 거리면서 내 음식을 호시탐탐 노려보고 있었다. 물론 냥이의 귀여움 따위에 지지 않는 나는 한 조각도 양보하지 않았다. 

 

닭고기 케밥
내 음식을 넘보던 냥이

 

다음날 터키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카파도키아로 떠나기 위해 일찍 잤다. 아마..? 다행히도 이번에는 시내에서 버스 가는 버스 노선을 확실히 익히고, 버스를 잘 타고 터미널에 갈 수 있었다. 가지안테프에서 카파도키아까지는 바로 가지 않고, 카이세리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카이세리까지 가는 길에 카흐라만마라쉬라는 도시에 잠깐 정차했는데, 흔히 터키 아이스크림이라 불리는 돈두르마의 본고장이다. 얼른 내려서 터미널의 돈두르마 가게에 들러 하나 사서, 버스에서 먹었다. 신기한 게, 한국에서처럼 콘에다가 파는 것이 아니라 컵에 담긴 채로 팔고 있었으며, 킬로그램 단위로도 팔고 있었다.

 

카흐라만마라쉬 돈두르마. 아예 포장된 채로 판매한다.
버스에서 본 아름다운 풍경

버스는 달리고 달려 카이세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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