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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1. 13. - 15. 터키 반
터키에서의 첫날, 늦은 오후가 되어서 반 시내에 도착했다. 동쪽 끝이라서 별거 없는 시골일 줄 알았는데 반 시내는 생각보다 훨씬 도시였다. 이란에 있다가 터키에 들어와서 그런지 훨씬 도시가 활기차고 이것저것 많았던 것 같다. 일단 숙소에 짐을 풀고 가장 먼저 한 것은 환전과 휴대폰 개통. 은행마다 환율을 다르게 쳐줬는데 내가 갔을 때에는 KuveytTurk 은행이 가장 환율이 좋았다. 신분증을 안 가져와서 한번 빠꾸먹고 다시 간 건 함정. 휴대폰 개통은 근처 통신사에서 했는데 어렵지 않게 가능했다.
내가 묵은 곳은 반에서 유일한 호스텔이다. 금연이라고 써있었는데 리셉션이 있는 층에서 사람들이 대놓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니, 리셉션 직원부터 실내흡연에 적극적이었다. 확실히 이란에서 지내다 와서 그런지 숙박비가 배로 올랐다. 익숙해져야 한다.
그 당시 반을 비롯한 터키 동부와 동남부는 대한민국 외교부의 여행경보 3단계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아무래도 이라크, 시리아와 가까운 지역이다 보니 테러 위험이 있어서 그렇게 정해진 듯 했다. 그렇지만 내가 여행했던 반은 평화롭기만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방심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고, 어디를 여행하든 항상 몸조심해야 한다.
터키의 국민술이라고 불리는 라크를 먹어보고 싶어서 이곳저곳 알아봤는데 그래도 이슬람의 영향 때문인지 술은 정해진 곳에서만 살 수 있게 되어있었다. 물가 치고는 술이 아주 저렴하지는 않았다. 라크는 소주잔 정도 크기의 잔에 물과 1:1 정도로 섞어서 마시는데, 라크를 먼저 반 정도 잔에 붓고 물을 따르면 뿌옇게 색이 변한다. 라크의 에탄올에 녹아있는 성분이 물에 의해 용해도가 감소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뿌연 색 덕분에 '사자의 젖'이라는 별명을 얻었다나 뭐라나. 아니스의 강한 향 덕분에 취향을 타는 맛이다.
반에 온 이유 중 하나는 반 호수 안의 악다마르 섬에 있는 아르메니아 교회를 가보고 싶어서이다. 반 호수까지 가는 법을 호스텔에 묵은 한 커플에게 물어봤는데, 비수기라서 섬으로 들어가는 배가 하루에 한번밖에 안 뜬다고 했다. 어쨌든 안 갈수는 없으니, 다음 날 일찍 일어나서 호수로 향했다.
호수에 가기 위해서는 터키의 흔한 교통수단인 돌무쉬를 타야 한다. 터키 전국적으로 다니는 노선이 정해져 있는 일종의 미니버스인데, 노선 안내가 미흡하여 잘 알아보고 타야 한다. 오토갸르 (일종의 버스터미널)에 가서 먼저 악다마르 선착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비수기이다 보니 노선이 바로 가지 않고, 중간에 한번 갈아타야 했다. 선착장에 도착했는데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불안했지만, 30분 가까이 기다려서 배가 출발하기는 했다.
2~30분 정도 배를 타고 들어가면 섬에 도착한다. 섬의 규모는 매우 작은데, 작은 섬과 그 섬 위에 홀로 덩그러니 있는 교회가 참 멋졌다. 터키와 아르메니아는 사이가 참 좋지 않은데 여기는 그래도 남아있다. 내부에도 들어가보았다.
터키는 음식이 맛있고 다양하다 보니, 최대한 여러 가지 음식을 맛보기 위해서 돌아다녔다. 특히 터키 동부와 동남부는 물가도 저렴하고 음식도 푸짐하게 나온다. 딱히 팁문화도 없고 한국처럼 식사를 마친 다음에 계산대로 직접 가서 계산하면 되는 형식이었다. 점심으로 이스켄데르 케밥을 먹었다. 케밥 하나만 시키면 빵이 기본으로 나오고, 야채 등도 함께 나온다. 매콤한 양념과 요거트가 잘 어울렸다. 물론 터키도 많은 음식이 케밥이지만, 적어도 이란보다는 조리법이 훨씬 다양하다는 점에서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 다음 딱히 할 게 없어서 그냥 카페에 앉아서 멍하니 있다가, 반 성에 가보기로 했다. 마찬가지로 돌무쉬를 타고 성 앞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날씨가 엄청나게 흐려지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산도 없어서 성을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돌무쉬를 타고 되돌아갔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폭우와 우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버스에서 내린 뒤에도 한참을 앞 건물에서 비를 피하다가 숙소에 돌아갈 수 있었다.
저녁도 케밥. 이 케밥의 이름은 아다나 케밥이다. 다진 생 소고기를 넣어(야 하지만 날고기를 먹다가 식중독에 걸린 사람이 발생한 사건 덕에 지금은 고기를 빼고) 만드는 치이 쾨프테가 함께 나왔다. 이녀석을 조금 떼서 빵과 함께 먹으니까 맛이 일품이었다. 확실히 이쪽 음식은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는다.
다음날도 딱히 할 게 없어서 빈둥거렸다. 전날 밤에 시내에 있는 버스회사 사무실에서 가지안테프로 가는 버스를 미리 예약해 놓았었는데 버스 시간이 늦은 밤이었다. 반에서 유명한 또 다른 명물은 고양이이다. 고양이 품종 이름부터가 반 고양이 (Van Cat)인데, 보호종이다 보니 여기서만 볼 수 있다. 반 백주년 대학교 (Van Yüzüncü Yıl Üniversitesi)라는 대학의 고양이 집 (Kedi Evi)라는 연구소가 있어서, 여기까지 돌무쉬를 타고 가야 한다. 돌무쉬에서 내린 후 경비소를 통과했더니, 경비원은 관광객의 냄새를 맡고 내 여권을 뺏으면서 고양이 집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반 고양이의 흰 털과 청색과 황색의 오드아이는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건물 내부에는 고양이들이 지내는 방이 있는데, 수컷과 암컷을 분리해놓고 있었다. 생각 없이 문을 열었다가 고양이가 다 탈출하는 대참사가 발생..할 뻔했는데 다행히 고양이들을 다시 방으로 집어넣을 수 있었다. 건물 밖에도 고양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고양이가 잘 보호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여기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고양이라는 점에서 방문할 만한 가치가 있다.
다시 반 시내로 돌아가서 시간을 때우다가 밤이 되고 버스를 탔다. 그래도 테러 위험이 있는 지역이다 보니 중간중간 검문소에서 경찰이 버스에 들어와서 신분증 검사를 했다. 외국인들한테까지 깐깐하게 검사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터키의 시외버스는 대부분 직행이 아니라 경로에 있는 규모 있는 도시는 다 경유한다. 내가 가는 가지안테프까지는 바트만, 디야르바크르, 샨르우르파 등등 도시를 경유해서 가지안테프까지 갔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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