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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1. 8. - 11. 10. 이란 이스파한

 

이란의 도시들은 하나같이 이름이 예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스파한 또한 이름만으로 나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야즈드에서 버스를 타고 이스파한에 도착했다. 야즈드에서 마지막 밤을 같이 보냈던 호주 남자에게 10달러를 빌렸었는데, 나에게는 100달러와 50달러 지폐밖에 없었던 지라 일단 택시를 타고 호주 남자가 묵는 숙소에 갔다. 거기서 환전이 안된대서, 일단 50달러를 호주남자에게 맡기고 내가 묵을 숙소 (아미르 카비르 호스텔)에서 환전을 해가지고 다시 호주남자의 숙소로 가서 10불을 주고 50불을 돌려받는 뻘짓을 하고 말았다. 내 숙소에서 호주남자 숙소까지는 2km 정도 되었는데, 왔다갔다 하느라 진을 다 뺐다.

 

호주남자의 숙소에서 내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잃어버렸던 휴대폰 충전기를 사러 잠깐 전자제품 상점에 갔다. 하나를 고르자 가게 주인이 '비스트! (20이라는 뜻)' 라고 말하고 계산기로 20만이 찍힌 숫자를 보여줬다. 이란은 현재 리알이라는 화폐단위를 쓰는데, 비공식적으로 토만 (1토만 = 10리알)이라고 쓰고 또 말할 때는 0 3개를 뺀 숫자를 말한다. 즉 가게 주인이 한 말은 2만 토만일 텐데, 그때는 의심이 많아서 주인아저씨가 날 등쳐먹는 것 같다는 생각만 하고 안 샀다. 저 20만이라는 숫자가 20만 토만 = 200만 리알을 얘기하는 건가?

 

200만 리알은 한국돈으로 2만원도 안한다. 하지만 장기여행자에게는 피같은 돈이다.

 

숙소에서 밍기적거리다가 밖을 돌아다녀 보았다. 길거리에 힙해보이는 카페가 있어서 들어가봤는데, 정말 이란에 와서 다양한 카페에 가본 것 같다. 의외로 카페 문화가 발달한 이란이다.

 

이란의 카페

돌아오는 길에 중국어로도 된 간판을 보았다. 아, 중국인 단체관광객의 힘인가. 심지어 알리페이까지 받고 있잖아?

알리페이...

다음날, 본격적으로 이스파한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처음 간 곳은 체헬 소툰 궁전이다. 체헬 소툰 (چهل ستون)은 페르시아어로 40개의 기둥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실제로 체헬소툰 외부에 보이는 기둥은 20개 뿐이다.

 

'이스파한 (اصفهان)'이라고 나스탈릭으로 써져있다

체헬 소툰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궁전 앞에 있는 정원의 연못이 반사하는 모습에 의해 기둥의 개수가 두배가 되기 때문이다. 이란인의 감성이란... 여튼 이스파한도 사파비 왕조 때 수도의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멋진 건물들이 많이 있다. 멋진 사진을 남기고 싶었는데 아필 건물 일부가 공사중이라 비계가 그대로 보였다.

 

체헬 소툰

체헬소툰 내부는 또 나름 멋졌다. 페르시아식 저 구조물은 정말 어디에나 있다. 모스크와는 다른 금빛의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내부의 벽에는 서양식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었다. 사실 그 당시 이란은 서구와도 많은 교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런 서양식 그림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렇지만 지금 이란의 대외 이미지는...

 

체헬소툰 입구
체헬소툰 내부
체헬소툰의 뒷모습

체헬소툰을 다 둘러보고 나서, 이스파한의 대표 관광지인 낙쉐 자한 광장으로 갔다. 이맘 광장이라고도 불리는데 그거보다는 원래 이름인 낙쉐 자한이 더 낫다. 여튼 이 광장은 천안문 광장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광장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일단 카페에 가서 간단하게 당을 보충했다. 이 광장 주변으로 바자르가 있는데, 거기를 찾아보면 다양한 카페가 있어서 고르는 재미가 있다. 페르시아식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카페였다.

 

낙쉐 자한 광장 (میدان نقش جهان)
이란은 카페가 참 많고 커피도 맛있다.

이때 난 페르시아의 건축물에 한창 질려있을 때라서 (거의 한달을 페르시아 건축을 보면서 여행하고 있을 때였다), 낙쉐 자한에 있는 모든 건물들에 들어가지 않고 한 군데만 갔다. 셰이크 로트폴라 모스크라는 곳으로 갔다. 위의 광장 사진에서 돔이 보이는 건물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알리카푸 궁전에 갔어야 한다.)

 

셰이크 로트폴라 모스크
셰이크 로트폴라 모스크

점심을 먹기엔 늦은 시간이 되었지만, 밥은 먹어야지. 체헬소툰에 가는 길에 만난, 나에게 지폐 수집이라는 명목으로 천원을 뜯어간 아저씨가 알려준 Azadegan이라는 음식점에 가려고 했는데 기억 안나는 이유로 못 가고 대신 이스파한의 특색있는 전통음식인 베르얀을 먹기로 했다. 베르얀이라는 이름은 인도의 비르야니를 떠오르게 하는데, 둘을 완전히 다른 음식이다. 둘다 '볶다'는 뜻에서 왔는데, 인도의 비르야니는 볶음밥이지만 이란의 베르얀은 양고기 간 것을 볶은 뒤 빵 두 조각으로 감싼 음식이다. 대충 빵으로 고기를 좀 집은 뒤 밑의 민트 비슷한 허브를 곁들여 먹는 음식. Azam Beryani라는 나름 유명한 음식점에서 하나 포장해서 숙소에서 먹었다.

 

이스파한의 전통음식 베르얀

그 후 별다른 곳에 가지는 않고, 시내와 바자르를 둘러보면서 오후를 보냈다. 특히 낙쉐 자한 광장 근처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을 파는 바자르가 넓게 형성되어 있어 나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둘러보던 중 한 카페트 가게에서 나를 들어오라고 하더니, 차 한 잔을 대접해 주면서 자기네 카페트에 대해서 설명해 주더라. 설명을 다 듣고 잠깐 혹했는데 가격을 듣고 (카페트 하나에 백만원 단위였다) 슬금슬금 자리를 떴다. 손으로 만든 카페트라 그런지 가격이 어마어마하다. 돈 많은 중국인이었으면 하나 질렀을 지도?

 

다음 날 아침에는 틀에 박힌 관광이 하기 싫어서 시내 남부에 있는 소페 산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종점까지 가면 되는데, 이스파한의 지하철역에는 티켓 파는 곳이 따로 없고 전부 앱을 깔아서 그 앱으로 지하철을 탄다. 역무원에게 티켓 사는 곳이 없냐고 물어보니,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문을 열고 들여보내 주었다. 이스파한 지하철의 특이한 점은 특정한 날에는 아예 운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첫날 이스파한에 왔을 때 지하철역이 전부 닫혀있어서 의아했던 점.

 

어쨌든 종점 역에 도착했다. (지도에는 Soffeh 역이라고 되어 있는데 뭔가 실제 역명은 조금 달랐던 걸로 기억) 역사 건물이 나름 멋졌다. 내려서 한참 걸으면 바위산이 보인다. 산 아래에는 공원이 넓게 조성되어 있는데, 그 공원도 나름 볼만한 것이었다.

 

지하철역
소페 산 올라가는 길

처음에는 걷기 편하게 포장된 길이 나오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그 길이 없어지고 바위를 밟고 가는 힘든 길이 나온다. 그래도 오랜만에 산에 오르는 거라 기분이 좋아서 불평 없이 갈 수 있었다. 중간중간에 테헤란에서 샀던 아몬드를 꺼내먹으면서 에너지를 보충하기도 하고. 

 

산 중턱에서 내려다본 이스파한 시내
산 정상

산을 다 둘러보고 나서 다시 내려온 후, 소페 버스 터미널 (지하철역과 연결되어 있다)에서 햄버거로 점심을 때웠다. 배를 채우고 나서,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졸파지구로 갔다. 이란에는 아르메니아인들도 많이 거주하고 있는데, 졸파지구는 이스파한에 위치한 아르메니아인 거주지이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 답게 졸파지구에는 모스크 대신 교회가 즐비했다. 여기서 가장 유명한 교회는 반크 교회이다.

 

반크 교회

아르메니아 교회답게 아르메니아어로 뭔가가 잔뜩 써져 있었고,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추모하는 장소도 있었다.

 

아르메니아어로 뭔가 잔뜩 쓰여있다

교회 내부에도 기독교적인 그림이 잔뜩 그려져 있었는데, 이란에 이런 교회가 있다는 게 상당히 의외라고 생각되었다.

 

반크 교회
반크 교회

졸파지구는 나름 깔끔하고 세련되게 거리가 형성되어 있어서 걷기 좋은 거리이다. 길거리에 카페가 많이 있어서 들어가서 커피를 한잔 했다. 정말 커피 마시기 좋은 나라 이란이다. 이 동네에서 커피를 주문하면 초콜릿 한 조각을 같이 주는데, 커피와 초콜릿을 곁들여 먹으니 참 좋더라.

 

졸파 지구
졸파지구의 커피

졸파지구에서 오후를 보낸 뒤 걸어서 시오세폴 다리까지 갔다. '시오세'는 페르시아어로 33을 뜻하고 '폴'은 다리를 뜻한다. 저 다리 밑을 받치는 기둥의 수가 33개였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가 열심히 세어볼 때마다 34개가 나왔다. 아마 내가 잘못 센 것 같다. 다리 아래는 '루드 자얀데'라고 불리는 강인데, 내가 갔을 때에는 아직 우기가 시작하지 않아 강물이 바싹 말라 있었다. 다리 주변을 산책하며 해가 지는 것을 보았다.

 

시오세폴 다리
여기는 어딘지 정말 기억이 안난다

해가 진 후, 아쉬움을 달래러 다시 찾은 낙쉐 자한 광장. 우연히도 야즈드의 그 호주남자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호주남자는 수많은 이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는데, 내가 호주남자를 보고 인사를 건냈더니 그 이란 사람들은 전부 나한테 몰려들었다. 알고보니 그들은 영어를 공부하는 학생들과 선생님이었다. 나에게 영어로 이것저것 물어보고, 사진도 찍고 내 인스타 아이디까지 받아냈다. 여행 갔다 온 이후 인스타를 한번 재가입해서 나는 이란사람들의 안부를 전혀 알 수 없다

 

낙쉐 자한 광장

하룻밤 더 자지 않고 바로 야간버스를 타고 타브리즈로 향하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버스표를 예매하지 않았던 게 화근이었다. 짐을 메고 버스를 타고 겨우 찾아간 카베 터미널 (이스파한의 메인 버스터미널이다)에서는 타브리즈 가는 표가 매진되었던 것이다. 이란의 버스터미널에서는 버스회사마다 노선이 다르고 표도 따로 구매해야 되는데, 가는 곳마다 타브리즈 가는 버스가 매진된 것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친 끝에 찾은 방법은 일단 테헤란까지 간 다음에 거기서 타브리즈 가는 버스로 갈아타기로 했다. 일단 테헤란 가는 버스를 끊었더니 타브리즈 가는 표를 알아봤던 다른 버스회사에서 테헤란까지 먼저 가면 된다고 뒷북을 치더라. 테헤란 가는 표를 이미 샀다고 보여주니 실망하는 눈치. 어쨌든 간단하게 한끼를 해결하고 테헤란행 버스에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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