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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1. 20. - 11. 21. 터키 콘야

 

'콘야'라는 지역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건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 마음의 낯섦>에서였다. 책에서 주인공인 메블루트는 콘야 주의 작은 동네 출신이며, 콘야 시에 방문한 적은 없다는 언급이 있다. 뭔가 신기한 이름의 이 도시는 알고보니 수피 이슬람의 창시자인 메블라나 잘랄룻딘 루미가 활동했던 곳이었다. 실제로 콘야는 터키에서 가장 보수적인 동네라고 한다. 하여튼, 괴레메에서 몇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콘야에 도착했다.

 

콘야 버스 터미널

다른 터키 도시와 마찬가지로 버스터미널은 시내 중심부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콘야는 나름 규모가 있는 도시이고 버스터미널에 트램이 다니고 있었다. (가지안테프에도 트램이 있었으나 탈 일이 없었고 버스터미널까지 가지 않았다.) 딱히 도시가 보수적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지는 않았다. 콘야에는 도미토리형 호스텔이 없기 때문에 메블라나 박물관 근처에 있는 싸구려 호텔에 들어가서 하룻밤을 묵었다.

 

저녁을 먹고 숙소 주변을 잠깐 산책했다. 역시 케밥이다. 중국 서부에서부터 터키까지, 한달 반동안을 케밥과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저녁식사

메블라나 박물관은 루미의 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파란색 고깔 모양의 특이한 구조물이 눈에 띄는데, 이는 루미를 모시는 곳에서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상징물이라고.

 

메블라나 박물관 야경
박물관 앞의 무슨 구조물.

다음날 박물관 내부를 제대로 둘러보기로 했다. 박물관 앞에 'Konya - The City of Hearts'라는 조형물이 있었다. 박물관 안에 들어가서 깜짝 놀랐던 게, 관광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있었기 때문이다. 뭐, 콘야가 카파도키아에서 파묵칼레 갈 때 들르기 좋은 위치에 있어서 잠시 관광하고 지나가기도 한다는 듯. 하여튼 중국인들은 전세계 어디에나 있다. 

 

메블라나 박물관 앞

메블라나 박물관은 수피즘의 성지이기 때문에 터키 현지인들도 많이 찾는 관광지이다. 수피즘은 일반적인 수니파나 시아파 이슬람과 다른 교리 때문에 이단 취급 받는다는 말도 있는데, 춤이나 노래 등의 의식을 통해 신과 접하려고 한다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안에 분수대가 있다

묘 내부로 들어가보았다. 여러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여기 말고도 각각 들어갈 수 있는 여러 작은 방들이 있었고, 방들마다 다른 용도의 물건끼리 모아서 전시가 되어 있었다. 내가 가장 흥미를 가졌던 부분은 과거의 책이 전시되었던 방이다. 

 

박물관 내부
이 책은 아주 오래된 책은 아닌 것으로 기억한다.
메블라나 박물관 입구

박물관을 나와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굉장히 열정적으로 예배에 참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콘야에 와서 반드시 봐야 할 것 중 하나가 세마 의식이다. 빙글빙글 돌면서 추는 춤으로서 신과 접하는 이 신비로운 의식은 수피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아쉽게도 날짜가 맞지 않아서 나는 세마를 보지는 못했다.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아쉽지만 그냥 공연장만 둘러보기로 했다. 메블라나 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메블라나 문화센터에 세마 공연장이 있다.

 

메블라나 문화센터의 세마 공연장

문화센터 바로 옆에는 루미를 모시는 곳들을 미니어쳐로 만들어서 전시해둔 곳이 있다. 원래 안 보려고 했는데 잠깐 비가 와서 비를 피해 건물에 들어왔다가 보게 되었다. 터키뿐 아니라 이집트 등 다른 나라에도 파란색 고깔 모양을 가지고 있는 건물이 있나보다. 그 외에는 건물의 양식이 나라마다 꽤 달랐다.

 

루미를 모시는 한 건물이다.
이 녀석은 이집트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

같은 건물에는 과거 삶의 모습을 재현해놓은 박물관도 있었다. 위의 미니어쳐들과 함께 무료로 관람이 가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당시의 모습을 360도 파노라마로 볼 수 있는 곳도 있다. 나름 음성지원까지 가능했었고.

 

과거의 모습을 재현해놓았다.

바로 옆에는 터키 독립전쟁에서 전사한 사람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었다. 터키 독립전쟁은 오스만 제국 멸망 후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는 데 결정적인 사건이다. 아타튀르크를 극진히 사랑하는 터키인 만큼 독립전쟁도 터키 역사상 잊을 수 없는 전쟁일 것이다.

 

기념비 입구
전사자의 이름이 벽에 기록되어 있다.

콘야도 지역 고유의 케밥이 있는데, 프른 케밥 (fırın kebabı)이라고 불린다. 일반적으로 고기를 구워서 내는 다른 케밥과 달리 이 프른 케밥은 고기를 쪄서 나오는지 굉장히 식감이 부드러웠다. 갈비찜 비슷한 느낌도 났다. 양이 좀 적긴 했지만... 맛있긴 했다.

 

프른 케밥

메블라나 박물관과 주변을 구경하고 프른 케밥을 먹었다면 콘야에서 볼 것은 다 본 셈이다. 메블라나 박물관 옆에 시장이 있어서 좀 구경해보기로 했다. 맛있어 보이는 카페가 있어서 잠시 앉아서 커피를 주문했는데, 터키커피 한 잔과 함께 정체불명의 파란색 음료가 같이 나왔다. 약간 단 맛이 나는 이 녀석의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커피는 정말 맛있었고 직원도 친절했다. 나중에 라떼 한잔을 더 시켜서 먹었다.

 

메블라나 박물관 옆 시장의 카페

시장 주변의 건물들은 정비가 깔끔하게 되어서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내었다. 딱히 살게 있지는 않았지만 (로쿰을 굉장히 싸게 파는 가게들이 몇 군데 있긴 했으나 너무 싼 가격이 수상해서 넘겼다) 구경할 맛은 제대로 났다.

시장 골목
커피 볶는 가게. 터키에서는 대개 커피 가격을 무게에 정비례해서 매긴다.
콘야의 시장 골목. 모스크에서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기도 한다.

거리를 따라서 조금 걷다 보면 알라딘 언덕이 나온다. 콘야 중심부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언덕이며, 콘야의 트램은 이 언덕 주위를 돌면서 노선이 바뀐다. 셀주크 시대의 역사가 남아있는 곳이기도 한 것 같지만, 지금은 공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언덕에 오르면 곧게 나 있는 방사형 도로를 볼 수 있으며, 언덕 위에는 모스크도 있어서 잠시 쉬었다 갈 수도 있다.

 

알라딘 언덕에서 메블라나 박물관 방향을 바라보았다.

 

알라딘 모스크

다시 메블라나 박물관 쪽으로 돌아갔다가, 두 달 가까이 신어서 다 뜯어진 신발을 버리기 위해 잠시 쇼핑몰에 들러서 신발을 한 켤레 샀다. 쇼핑몰의 스타벅스에 멍하니 앉아있다가 숙소에 돌아와서 짐을 챙기고 터미널에 갔다. 원래 안탈리아에 갈 예정이었으나, 어차피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는 계획이 깨져버린 김에 파묵칼레 - 안탈리아 - 이스탄불 순으로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안탈리아에서 이스탄불까지 버스로는 한참 걸리지만 비행기로는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리거든. 게다가 페가수스 항공 특가로 100리라 정도의 매우 싼 가격으로 탈 수 있었고. 여튼 터미널에서 데니즐리 행 버스를 탔다.

 

해질 무렵의 메블라나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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