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18. 11. 11. - 13. 이란 타브리즈

 

이스파한에서 겨우 테헤란행 버스를 탔고, 버스는 한참을 달려 새벽 4시가 좀 넘어서 타브리즈 아자디 터미널에 내려줬다. 버스에서 내린 후 다시 터미널 건물로 들어갔는데, 다행히 터미널은 열려있었고 아침부터 몇몇 버스회사들은 사람을 모으고 있었다. 어디선가 '타브리즈!' 하는 소리가 들려서 냉큼 버스티켓을 살 수 있었고, 타브리즈행 버스는 5시에 테헤란을 출발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멀리서 설산이 보여서 나름 멋있었다. 

 

타브리즈는 이란 여행에서 약간 기대했던 곳인데, 여행 전에 (군대에 있을 때) EBS의 '세계테마기행' 프로그램 이란 편에서 소개된 도시였기 때문이다. 거기서 주로 다룬 곳은 타브리즈의 그랜드 바자르와 타브리즈 근교의 칸도반이라는 곳이었다. 당연히 둘 다 가봤다. 타브리즈가 위치한 주의 이름은 '동아제르바이잔 주'로, 사실 페르시아인보다도 아제르바이잔인이 더 많이 사는 지역이다. 언어도 페르시아어와는 다른 아제르바이잔어가 많이 쓰이는데, 실제로 숫자를 읽는 방식이 페르시아어와는 달랐고 터키어 느낌으로 읽었다.

 

타브리즈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터키로 향하는 버스를 알아보는 것. 타브리즈 시내에 가기 전에 터미널에 들러서 터키로 가는 버스를 알아봤는데, 매일 아침 반(Van)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한다. 원래 기차를 타고 가려고 했었는데, 기차는 일주일에 한번밖에 없어서 시간이 안 맞아서 실패. 반으로 가는 버스는 터미널에서 출발하지 않고 Darvazeh Tehran이라는 곳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거기가 어딘지 몰랐지만 어쨌든 버스표를 받아들고 숙소로 갔다.

 

버스 안에서 보이는 설산

타브리즈에는 도미토리형 호스텔은 따로 없었고, 내가 묵은 곳은 개인실이 있는 방이었다. 예약은 안 하고 갔는데 게스트하우스 직원이 싼 방과 조금 비싼 방의 선택지를 줬다. 싼 방에 묵으면 방 내에 화장실이 없고 샤워도 다른 방에서 해야 된다나 뭐라나. 그래도 최대한 돈을 아끼기 위해서 당연히 싼 방에 묵었다. 1박에 5유로였나 그랬던 걸로 기억한다.

 

 

딱히 타브리즈에서 할 게 많지는 않아서 그냥 슬슬 걸어서 바자르까지 갔다. 바자르는 늘 그렇지만 구경하는 재미는 있지만 살 건 별로 없다.

 

타브리즈 그랜드 바자르

 

저녁에 숙소 직원에게 칸도반 택시투어에 대해 물어봤더니, 내일 러시아인 한 명이 간다고 해서 거기 같이 가면 된단다. 칸도반은 그렇게 큰 동네는 아니라서 오전 반나절 정도로만 진행된다고 했다. 어쨌든 다음날 아침에 나왔더니, 엄청난 여행자의 포스가 느껴지는 러시아인이 있었다. 같이 택시를 타고 한시간 좀 덜 달려 칸도반에 도착. 택시기사는 중간에 내려서 우리에게 빵을 사줬는데, 갓 구운 따끈따끈한 빵은 정말 맛있었다. 거기다가 저렴하기까지 하니, 여행할 맛 난다. 비싸고 고급진 음식보다 서민적인 느낌 풀풀 나는 음식이 더 좋다.

 

칸도반은 터키의 카파도키아와 비슷한 모양의 바위집이 있는 동네이다. 카파도키아가 완전히 관광지화 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여기의 바위집은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다. 러시아 남자랑 헤어져서 각자 구경하고 택시기사가 말했던 시간에 모이기로 했다. 이란 사람들도 많이 찾는 모양인데, 어떤 이란 여자가 나한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찍어주기도 했다.

 

칸도반

칸도반이 정말 사람 사는 곳이라고 느끼게 만든 원인 중 하나는 길에 쌓여있는 염소똥이다. 시골 느낌이 나서 참 정겨웠는데, 똥을 전부 피해다니는 것은 불가능하고 한번쯤은 밟게 된다.

 

칸도반
칸도반
칸도반

 

중간중간에 향신료나 먹을거리를 파는 곳도 있다. 특히 바닥에 쌓여있는 얇은 판 모양으로 생긴 것은 '라바샤크(lavashak)'라는 과일을 졸이고 굳혀서 얇게 편 것인데, '세계테마기행'에도 등장했던 음식이다. 달달하고 맛있는데, 맛만 보고 사지는 않았다. 말린 살구도 참 맛있다. 기후가 건조해서 그런지 과일이 참 달고 맛있다. 이는 중앙아시아와 신장 위구르 자치구도 마찬가지이다.

 

말린 과일과 라바샤크 등을 파는 가게
칸도반
먹을것을 파는 곳.

이날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날이 흐렸다는 것이다. 나중에 돼서는 빗방울까지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가 제법 와서 비를 피할 곳을 찾고 있었는데, 러시아 남자는 벌써 허브를 파는 가게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들어와서 같이 비를 피하자고 했다. 허브가게 주인은 우리에게 오레가노를 넣은 홍차를 대접해주었다. 이란인이 차를 마시듯 각설탕을 입에 먼저 넣고 차를 홀짝인다. 뜨거운 차가 설탕을 녹이면서 혀를 감싸는 기분이 좋다. 주인은 우리에게 어떤 허브가 어디에 좋고 잔뜩 설명해 주었었는데,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비가 좀 잦아들기 시작하고 마침 택시 시간도 다 돼서 칸도반을 떠난다. 돌아가는 길에 현장학습을 온 듯한 여학생들이 잔뜩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외국인을 보자마자 반가워하면서 사진 찍자고 하고, 그 중 한 명은 특히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지 엄청 같이 사진을 찍고 싶어했다. 그때 인스타 아이디도 교환했었는데, 계정을 다시 만들면서 연락이 다 끊겼다.

 

칸도반

다시 차를 타고 타브리즈에 돌아왔다. 러시아 남자는 코르데스탄에 간다면서, 고속도로 중간에 내려서 히치하이킹을 하겠다고 먼저 떠났다. 혼자 타브리즈에 도착한 나는 빈둥거리면서 밥을 먹고 다시 바자르에도 가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숙소 바로 옆에 음식점이 있었는데, 한국돈 천원도 안하는 저렴한 가격에 한끼 때울 수 있었다. '첼로 케밥'이라고 불리는 음식인데, 그냥 페르시아어를 한국어로 옮긴 그대로 '밥과 케밥'이라는 뜻이다. 밥에 버터가 올려져서 나오는데 은근히 맛있다.

 

첼로 케밥

시내를 둘러보다 지나친 '아르게 알리샤 (Arg-e Alishah)'라고 불리는 성인데, 공사중이어서 내부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냥 밖에서 사진 찍는 걸로 만족.

 

아르게 알리샤
아르게 알리샤

다시 바자르를 구경하면서 하루 마무리. 원래 엘골리 정원에 갈 생각이었는데 숙소에서 너무 멀어서 그냥 패스. 바자르 내부에 정원이 있었는데 나름 볼만했다. 마지막 날은 식당에서 먹지는 않고 그냥 밖에서 빵과 바클라바를 사다가 숙소에서 때웠다.

 

그랜드 바자르 내부의 정원

타브리즈에서 반으로 가는 버스는 새벽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서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다 쌌다. 다행히 아침부터 택시가 있었는데, 택시를 잡고 'Darvazeh Tehran'이라는 곳으로 가달라고 했다. 그래도 택시기사가 잘 알아먹고 내려줬다. 알고보니 버스정류장 이름이었다. 일찍 도착했는지 처음에 내렸을 때에는 아무것도 없더니만,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모여들고 사무실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터키 반까지 가는 버스는 대형버스가 아니라 봉고차 느낌의 미니버스였다.

 

 

터키 반으로 가는 버스

 

 

버스는 시골길을 한참 달리다가 중간에 식당에서 한번 내려주고 식사시간을 주었다. 사람들이 먹는 커리 비슷한 음식을 먹고 후식으로 바클라바까지 먹고 또 가서 이번에는 실제 국경으로 갔다. 국경 근처에서는 담배를 파는 가게들이 많은데, 담배값이 이란이 터키보다 훨씬 비싸다 보니 이란에서 많이 사간다더라. 반과 같이 국경에 가까운 터키 도시에서는 이란산 밀수담배가 많이 팔린다나. 출국심사대로 걸어가는데 어떤 꼬맹이 한 명이 내 짐을 강제로 카트에 싣고 출국장 앞까지 가주었다. 물론 돈을 뜯어갔다. 어차피 이란 밖에서 리알화는 휴지조각이니 그냥 적선할 겸 돈을 냈다.

 

이란 출국심사는 매우 널널했다. 심사를 끝내고 터키 입국심사를 받으러 갔다. 'Nasılsın? (How are you?)'라는 직원의 질문에 본능적으로 'İyiyim (I'm good)'이라고 대답해버렸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터키어였다.) 직원은 나에게 차 한잔을 주고 내 여권을 훑어보더니, 나한테 '전에 터키 온 적 있냐' 이런 질문을 하면서 뭔가 심각한 듯 해보였다. 그러더니 내 여권을 들고 어딘가로 가고 한참 있다가 입국도장을 찍고 내보내줬다. 내 예상과는 달리 아직 우리가 탈 버스는 입국심사를 통과도 못해서, 한참을 추위에 떨다가 버스에 탈 수 있었다.

 

버스는 한시간을 넘게 더 가서 반 시내에 나를 내려다주었다.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