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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룸에서 체투말행 ADO 버스를 탑승하고, 정글을 뚫고 남쪽으로 향했다. 얼마나 갔을까, 창밖으로는 도시의 흔적조차도 보이지 않고 빼곡한 정글의 나무들만이 눈에 아른거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중간중간 작은 마을들이 있긴 했지만. 물론 이 ADO 버스는 툴룸과 바칼라르 사이에 아무 도시에도 정차하지 않았다.
마을을 지날 때면, 도로변에 지나다니는 운전자들에게 음식을 파는 사람들을 쉽사리 볼 수 있었다. 이제 한국에서는 드문 풍경이지만, 이 모습이 하여금 십년, 혹은 이십년 전의 향수를 느끼게 해준다. 차가 많이 다니는 곳은 아니라 얼마나 장사가 잘 될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버스를 타고 3시간 가까이 이동한 끝에 바칼라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는 현 시점에는 새로운 버스터미널이 시 외곽에서 절찬 영업중이지만, 내가 방문했던 2024년 여름만 해도 시 중심에 가까운 길가에 허름한 터미널이 있어서 하차할 수 있었다. 여기서 호숫가의 관광지까지는 1km 넘게 떨어져있어, 짐을 가지고 걷기에는 조금 멀긴 하다. 하지만 택시는 사치이니, 그냥 걸어가보기로 했다. 지금은 주요 관광 포인트로부터 버스터미널이 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아마 택시를 타는 것이 반 필수일 것이다.
신기하게도 거리를 걷다 보니 개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주인이 있는건지 아니면 들개인건지, 이들은 목줄도 달려있지 않은 채로 마을을 활보하고 있었다.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무래도 택시를 타는 게 현명한 선택일 듯 하다.
아무튼 내가 머물렀던 곳은 호숫가에 위치한 한 호스텔이었다. 다른 호스텔에 비해 숙박비가 조금 비싸긴 했으나, 호수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 분위기는 최고였던 곳. 파티 호스텔이기 때문에 밤에는 좀 시끄러워져서, 조용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비추.
특이하게 바칼라르를 여행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유럽 출신의 서양인들이었다. 칸쿤이 미국인들의 휴양지로 유명한 것과는 정반대. 미국인들은 그냥 칸쿤의 호텔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호캉스를 즐기는 것일까?
호텔에서 잠시 쉬다가, 저녁이 되어 배가 고파져서 나온 곳. 내륙 지방에 살다 보니 항상 해산물에 고픈 참에, 마침 근처에 평점이 괜찮은 해산물 요리 전문점이 있어서 찾아가 보았다. 한국으로 치면 물회 비슷한 느낌이 나는 세비체를 주문해 보았다. 여기의 세비체는 익힌 새우가 메인이어서 지난번 페루에서 먹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긴 했지만, 그래도 시큼한 소스의 느낌이 괜찮았다. 배가 고팠던 덕에 토르티야 칩과 함께 완전히 비워버렸다.
다음날 오전에는 바칼라르를 한번 산책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시내의 소칼로 (Zócalo) 광장 옆에는 산 펠리페 요새 (Fuerte San Felipe)가 위치해 있다. 마야 유적 같은 건 아니고 스페인 제국이 점령하던 시기에 세워진 요새. 내부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하며, 나는 그냥 밖에서 요새의 견고함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이른 점심을 먹기 위해 허름해보이는 식당을 하나 발견해서 들어갔다. 멕시코식 브런치 메뉴 중 하나인 칠라킬레스 (chilaquiles)와 함께 레몬맛이 나는 탄산음료를 주문했다. 토르티야 칩 위에 소스를 부어서 먹는 요리인데, 칩의 바삭한 식감 대신 소스에 촉촉히 적셔진 칩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요리였다. 너무 덥고 습하다 보니 찬 음료에서 김이 나는 진풍경을 목격하며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마주친 오토바이. 포솔 (Pozol)이라는 발효시킨 옥수수 가루로 만든 음료를 팔고 있었다. 아이스크림 트럭이라도 본 마냥 홀린 듯 다가가서 한잔을 사버렸다. 코코아가 들어간 것과 안 들어간 것, 두 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그 중에 나는 코코아를 넣은 것으로. 미숫가루와 상당히 비슷한 맛이 나서 문득 한국 생각이 났다.
바칼라르는 휴양지이기도 하고, 시골 읍내 정도의 작은 규모를 가진 도시이다 보니 할 만한 것이 별로 없으며, 호수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는 것이 이 곳의 주된 할거리이다. 하지만 호숫가에서 바라보기만 하기에는 여기까지 온 게 아깝지 않은가. 바칼라르에 방문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하는 보트투어에 참가하러 길을 나섰다. 길거리에 다니다 보면 모객을 하는 투어사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출발이 임박한 배에 한두 명이라도 더 태워보기 위해 할인을 제공하는 경우도 꽤 있다. 좀더 작은 배인 란차 (Lancha)와 더 크고 편안(?)한 폰톤 (Ponton)이 있는데, 나는 출발 직전의 폰톤을 350페소 주고 탑승할 수 있었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배를 타고 나아가보자! 물빛부터가 우리를 설레게 만든다.
이 2시간 남짓한 투어는 우리를 호수의 여러 포인트에 데려다주고, 선장이 가이드로서 각각에 대해 설명해주기도 한다. 아쉽게 영어를 못 하는 선장이었기에, 나에게는 특별히(?)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서 영어로 번역된 문단을 보여주었다.
유독 물이 검은 부분이 있는데, 바로 세노테 네그로 (Cenote Negro). 유독 물이 깊어서 더 어두운 색을 띠게 된 곳이다. 안전을 위해 여기서는 수영을 할 기회를 얻지는 못했는데, 여기서 다이빙을 하는 투어 프로그램도 있는 모양.
에메랄드빛 물의 세노테 에스메랄다 (Cenote Esmeralda). 여기는 물이 허리 조금 높이까지 올라올 정도로 얕은 덕에 수영을 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열대지방의 7월답게 물이 굉장히 따뜻했지만, 수영을 하기에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물장구를 치면서 필연적으로 물을 마시게 되었는데, 짠맛도 하나도 없고 물비린내도 없더라. 같은 배에는 독일에서 온 젊은 여자 2명이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은 물놀이가 지겨웠는지 보트에서 누워있으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바뀌는 물 색을 감상하며 다시 이동했다.
호수가 워낙 아름답다 보니 호숫가로 수많은 리조트 호텔들이 들어서 있다. 그 중 특이하게 중국풍 양식을 한 호텔인 카사 치나 (Casa China)와 아랍풍의 카사 아라베 (Casa Árabe)를 보면서 이동할 수 있었다. 오른쪽의 뭔가 미국 중산층이 살 만한 집은 이름이 뭐였더라..?
많은 사람들이 이미 물놀이를 즐기고 있던 세노테 코칼리토스 (Cenote Cocalitos). 이 세노테는 특이하게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 지대에 위치해 있어, 수십억년 전 자연의 산물과 함께 수영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그 외에 과거에 해적들이 이동할 때 이용하던 수로 등등을 탐사하는 것으로 투어를 마쳤다.
저녁으로 뭘 먹을지 고민하다 들어온 식당. 라 와하케냐 (La Oaxaquena)라는 이름 답게 와하카 지방의 요리를 파는 식당이었다. 멕시코를 여행하는 사람이 하나같이 극찬하던 도시인 와하카. 이번에는 유카탄에만 머물렀기에 갈 기회가 없었으나 후에 반드시 가보는 걸로. 아무튼 그 아름다운 도시에서 무슨 요리를 먹는지라도 경험해보기 위해, 와하카 요리 중 대표적인 틀라유다 (Tlayuda)를 주문해 보았다.
아주 바삭하게 구워낸 토르티야 사이에 고기와 치즈 등등 이것저것이 들어가 있는 요리. 다양한 버전이 있어 원하는 재료가 들어간 것을 고를 수 있었는데, 이 틀라유다 중에는 특이하게 차풀린 (chapulín)이라는 메뚜기를 잔뜩 올린 녀석도 있다는 것. 정말정말 궁금했지만 차마 시도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 건 함정.
내가 묵었던 호스텔의 마지막 밤. 다음날은 아침 일찍 길을 나서야 하므로 일찍 자는 걸로 했다.
다음날은 유카탄 주의 주도이자 유카탄 반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인 메리다 (Mérida)로 이동하는 날. 버스 터미널 앞의 음식 가판대에서 토르타와 콜라를 먹고 버스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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