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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다 터미널 내부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숙소를 나와 맞은편에 있는 버스 터미널에 입장했다. 버스를 타고 욱스말 (Uxmal)로 이동하기 위해서였다. 아마 한국인에게 가장 잘 알려진 마야 유적은 치첸 이트사 (Chichen Itza)일 테지만, 메리다에 머무는 김에 조금 덜 알려진 유적지를 방문해보고 싶어서 욱스말을 한번 가보기로 했다. 원래는 치첸이트사도 시간이 되면 방문을 해보고자 했지만, 스케줄 문제로 아쉽게도 포기해야 했다. 여행에 관해서는 약간의 홍대병 비슷한 것이 있어서, 남들이 덜 찾는 곳을 우선적으로 가고 싶어지는 욕망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욱스말로 향하는 SUR 버스

 
욱스말행 버스를 타기 위한 과정은 조금 까다로웠다. 이 지역의 로컬 버스들은 한국이나 여타 국가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하듯이, 탑승 시 Ahorro Bus라는 교통카드를 찍어야 한다. 따로 티켓을 구입해서 탑승할 수 없었으나, 터미널의 창구에서 욱스말을 간다고 하면 얼마를 지불해야 할지 알려준 후 금액이 충전된 카드를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욱스말 행 왕복 요금에 카드 자체의 가격까지 냈었으며, 실제로는 충전 금액에 따라 소정의 보너스가 더 충전되는 형태였다. 여러 번 이용할수록 이득인 형식. 이 요금은 신용카드로도 지불이 가능했다.
 
탑승구 플랫폼에 입장 시 입구에서 카드를 스캔 후 들어갈 수 있었으며, 에어컨이 틀어져있는 시원한 공간에서 앉아서 버스 시간까지 기다릴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를 탑승할 수 있었다. SUR이라는 회사의 버스로, ADO에 비해 낮은 등급의 버스였다. 이런 버스는 목적지까지 가면서 중간에 존재하는 마을이란 마을은 전부 정차한다고 보면 된다. 메르세데스 벤츠 버스였지만 내부는 덜컹거리는 일반적인 시내버스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욱스말 입구


 
한시간 반정도 지나서 버스가 욱스말 입구에 도착했으며, 여기서 오솔길을 따라 땡볕 아래를 조금만 걸으면 실제 유적 입구가 나타난다. 꽤나 큰 입장료를 지불하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야생동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열대지방 아니랄까봐, 내려서 걸어가자마자 이구아나 한마리가 인도를 틀어막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구아나
욱스말 피라미드 앞

 
Uxmal이라는 이름은 정확히는 '우쉬말' 정도로 발음되지만, 아무래도 영어처럼 발음한 것이 워낙 정착이 되었다 보니 욱스말이라고 하게 된다.


마법사의 피라미드

 
욱스말 유적 내부로 들어가서 가장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마법사의 피라미드 (Piramide del Adivino)라고 불리는 거대한 건축물로, 욱스말이라고 하면 떠올리게 될 랜드마크이다. 치첸이트사의 피라미드와 비슷해 보이면서도 자세히 보면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치첸이트사가 조금 더 모서리가 뾰족하다면 여기는 뭉툭한 모양? 앞에 서있는 사람과 비교해 봐도 피라미드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지금은 문화재 보호를 위하여 피라미드를 올라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나, 이 피라미드의 백미는 바로 특유의 메아리를 듣는 것이다. 마침 한 단체를 인솔하던 가이드가 피라미드 앞에서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피라미드 쪽에서 마치 새가 지저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사람들이 즐거워하며 새의 울음소리를 재현하고 있었다. 
 

욱스말
마법사의 피라미드


 
피라미드의 뒤쪽으로 와봤다. 욱스말을 여행하는 노부부의 모습이 퍽 멋졌다.
 

욱스말

 
피라미드를 뒤로한 채 유적 안쪽으로 들어갔더니,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조각된 돌을 쌓아 만든 건축물이 있었다. 여기서는 건축물 바깥으로 삐죽 튀어나온 돌들이 눈에 띄는데, 먀야 신화에 등장하는 비의 신 차크 (Chaac)를 상징한다.
 

욱스말

 

여자 수도원의 중정

 
조금 걸으니 나오는 부분은 여자 수도원의 중정 (Cuadrángulo de las Monjas). 이름답게 건물들이 사각형을 이루고 있었고 내부에 정원이 있었다. 실제 수도원이 있었던 곳은 아니고 왕궁으로 쓰였다고 하는데, 이 지역을 지배하게 된 스페인인들이 이름을 붙인 거라고. 이렇게 중정이 있는 형태의 건물이 세계적으로 자주 보이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표지판 위의 새 한마리

 
파란빛의 긴 꼬리를 달고 있는 아름다운 새 한마리가 표지판 위에 앉아있길래 사진을 한번 찍어보았다. 멕시코 유카탄 반도와 중미에 서식하는 새로, 나라마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유카탄 반도에서는 긴 꼬리가 시계추처럼 움직인다는 뜻으로 Pájaro reloj (시계 새)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마야어로는 Toh라고 한다나. 새의 깃털에서 파란색은 색소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 깃털의 독특한 구조에 빛이 파장별로 다르게 반사되는 덕에 보이는 거라나, 그래서 새의 파란색은 더욱 신비롭다.
 

구기 경기장

 
좀더 둘러보니, 일렬로 두 개의 구조물이 보이고, 각각에 고리 모양의 돌이 달려 있는 형태를 볼 수 있었다. 마야인들이 공놀이를 하던 구기 경기장 (El Juego de Pelota)이다. 단순히 공놀이를 하던 곳만이 아니라, 여기서 승리하면 신에게 제물로 바쳐지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고. 이기면 죽는 경기라니 현재로선 상상할 수조차도 없지만, 과거 마야인들이 신을 어떻게 대했는지 짐작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새끼 이구아나

 
여기서는 좀더 작고 귀여운 이구아나를 보면서 지나갈 수 있었다.
 

욱스말

 

거북이의 집

 
잠시 들러본 이 건물의 이름은 거북이의 집 (La Casa de las Tortugas). 사진을 얼핏 보면 거북이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의문이 들기 쉽지만, 해답은 지붕 부근에 있다. 원기둥 모양이 겹쳐져 있는 장식 위를 보면 동그란 거북이 등껍질 모양의 장식이 달려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 이 거북이도 마야 신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동물인데, 거북이가 물속과 땅위에서 모두 살아가듯이, 물과 땅을 이어주는 매개체의 역할로 보았다고. 비의 신 차크와도 관련된 이 동물 또한 마야 문명에서 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방증하는 매개체이다.
 

총독관

 
그 다음 둘러보면서 방문한 곳은 총독관 (Palacio del Gobernador). 일자로 길쭉한 모양을 한 건물이 돌로 된 제단 위에 고고하게 올려져 있는데, 높이 올려진 모양새부터가 웅장함이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멀리서 봐도 멋진 건물인데 자세히 보니 기하학적 문양의 아름다움까지도 만끽할 수 있었다.
 

재규어 왕좌

 
이 건물 바로 앞에는 재규어 왕좌 (Trono del Jaguar)라는 머리 두개 달린 재규어 석상으로 된 왕좌가 위치해 있다. 아쉽게도 지금은 앉지 못하도록 주변에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욱스말

마지막으로 깊은 정글 속에 숨겨진 마야인들의 유산을 사진으로 담고 유적지를 나섰다. 버스가 도착할 예정시각보다 많이 남아서 뭘 할지 고민을 좀 하다가, 식당은 너무 바가지요금을 씌우는 것 같아서 단념하고 결국 방문한 곳이 욱스말 유적 바로 옆에 위치한 초코스토리 박물관 (Museo Choco-Story). 전 세계에 같은 이름의 박물관들이 여럿 있는데, 아무래도 초콜릿과 연관이 큰 지역마다 다른 테마로 지어지는 모양. 초콜릿이라는 이름 자체는 아즈텍어 쇼콜라틀에서 온 말이지만, 아즈텍 문명의 지척에 있는 마야 문명도 초콜릿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초코스토리 박물관

 
욱스말 유적에서 발걸음을 올려 박물관으로 향했다. 적으나마 유적 방문을 마친 사람들이 초콜릿 박물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초코스토리 박물관

 
건물 외부는 역시 정글 아니랄까봐 식물들이 빼곡하게 심겨져 있었고, 이곳만 봐선 초콜릿과 크게 관계가 있어보이진 않았다. 사실 대부분의 전시는 건물 내부에 이루어져있기 때문.
 

초코스토리 박물관

 
전시 초반은 마야 문명과 초콜릿, 카카오가 어떻게 깊은 연관이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대부분이었다. 초콜릿이라고 하면 유럽의 디저트라는 생각만 하고 있어서 딱히 원산지가 어디인지 크게 생각은 안 하고 있었던 터라, 카카오가 남미 대륙에서부터 전파되었고 초콜릿을 마시는 문화가 멕시코에서 꽃피우기 시작했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전세계인들이 즐겨먹는 초콜릿이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마야인들의 의식

 
한구석에는 마야인의 의식을 재현한 공연도 하며, 매 20분마다 진행된다. 내가 방문했을 때에는 비가 오려고 해서 공연이 취소될 뻔했지만, 다행이 이슬비만 살짝 오는 정도여서 취소 없이 예정대로 공연시 진행되었다. 작은 규모이지만 그냥 한번쯤 볼만했다.
 

초콜릿 시음

후반부에는 이 박물관의 하이라이트나 마찬가지인 초콜릿을 시음해볼 수 있는 곳이 나온다. 과거에 마야인들이 초콜릿을 마셨듯이, 카카오와 그 외의 식재료들로 만든 따뜻한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곳. 특히 멕시코에서 마시던 초콜릿은 고추가 들어서 살짝 매콤한 맛을 내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도 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현대의 초콜릿과 달리 전혀 달지 않았던 것도 포인트.


에네켄

 
관람을 마치고 나왔더니 박물관 바로 앞에 삐죽한 선인장을 잔뜩 심어놓은 밭이 보였다. 흔히 '애니깽'이라는 표현으로 한국인에게 알려진 에네켄 (Henequen). 선인장 아니랄까봐 뾰족한 가시가 잎에 돋아나있는 게 압권인데, 왜 멕시코로 처음 이주한 조선인 노동자들이 에네켄을 캐면서 많이 다쳤는지 바로 이해가 가능하다. 다음날 방문하게 될 한인 이민사 박물관에 대해 한번 미리 생각해볼 수 있었다.
 

콜렉티보

 
원래 버스가 오기로 되어있는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버스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버스정류장 옆에 있는 가판대에서 음료를 사마시면서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갑자기 콜렉티보 한 대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미리 충전되어 있던 교통카드가 아싸웠으나, 버스고 뭐고 얼른 여기를 벗어나는 게 우선이지 않은가. 콜렉티보에 탑승한 후 가까운 마을로 먼저 이동한 후, 거기서 갈아타서 메리다 시내로 향할 수 있었다. 다행히 충전된 금액은 다른 버스를 타는 데 이용할 수 있었으나,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
 

La Chaya Maya


 
저녁으로는 메리다에서 가장 유명한 유카탄 음식 레스토랑인 '라 차야 마야 (La Chaya Maya)에 방문했다. 시내에 두 지점이 있는데 그 중 조금 더 로컬 분위기가 느껴졌던 곳으로 방문. 닭고기와 라임으로 만든 수프인 소파 데 리마 (Sopa de lima)와 유카탄 전통의 돼지고기 요리인 폭축 (Poc chuc)을 주문해서 먹을 수 있었다. 수프는 닭곰탕과 유사한 맛이었으나 라임 덕에 산미가 가미되어 있어 식욕을 돋울 수 있었으나, 의외로 폭축은 생각보다는 평범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유카탄 전통 요리들

 
기나긴 하루를 맞이하며 메리다를 떠나는 다음 날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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