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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칼라르에서 버스를 타고 메리다로 향했다. 유카탄 반도가 은근히 큰 덕에 5시간이 넘는 긴 시간이 걸리는 여정이었다. 일반 ADO 버스보다 조금 더 고급인 보라색 버스이지만, 탑승 시 물과 간단한 간식을 제공받는 것 말고 체감이 되는 부분은 별로 없었다.
맨 앞의 오른쪽 자리를 배정받아 바깥 경치를 구경하며 갈 수 있으려나 했는데, 아쉽게도 앞쪽이 불투명한 줄무늬가 그려진 유리로 막혀 있어서, 측면의 창 너머를 내다보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출발한지 얼마나 됐을까, 새로 공사중인 철도가 건설되는 현장을 보며 지나갈 수 있었다. 과거 마야 문명이 찬란했던 유카탄 반도와 주변 지역의 관광지들을 이어주는 트렌 마야 (Tren Maya). 지금은 전 구간 개통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가 방문했을 때만 해도 ㅂ팔렝케에서 캄페체, 메리다를 거쳐 칸쿤까지 가는 일부 구간만 개통이 되어있던 상황. 이번에는 아쉽게 탈 기회가 없었지만 다음에 유카탄 반도에 또 방문하면 그때는 이용해 보는 걸로.
한국에서는 주로 길가에 트럭이 서서 장사를 하지만, 멕시코는 그냥 대로변에 자리를 깔고 과일이나 먹거리를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적 자체는 드문 곳이지만 그래도 지나다니는 차가 멈춰서서 사먹을 수 있으니 나름 장사가 잘 되려나..? 우리 버스도 여기서 멈췄는데, 교대로 운전하던 기사 두 명이 내려서 과일을 사먹고 있었다.
지루한 여정이었지만, 정글길 사이에 아기자기한 마을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나름 있었다.
'Bienvenidos a Yucatan'. 한참을 걸려서 드디어 킨타나로오 주를 벗어나서 유카탄 주로 들어올 수 있었다. 킨타나로오는 특이하게 주변 지역들보다 1시간 이른 시간대를 사용하기 때문에, 여기서 1시간을 벌 수 있었다. 물론 유카탄 주에 진입했다고 해서 다가 아니고, 이제서야 반쯤 온 것. 메리다는 유카탄 주에서도 북서쪽 끝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한참 더 가야 한다.
한참을 걸려 도착한 메리다 외곽의 알타브리사 (Altabrisa) 터미널. 시내 중앙에도 터미널이 있지만 왠지 모르게 표값을 할인 안해주더라. 그나마 할인이 좀 되던 알타브리사 행을 구입했기 때문에 여기서 내렸다. 시내까지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을지 알아보았으나 몇 번 갈아타야 돼서 쉽지 않아 보였고, 그냥 택시를 타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 와중에 눈에 들어오던 도로명. 터미널 앞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뻗어있는 이 도로는 말 그대로 대한민국로 (Avenida República de Corea). 원래 다른 이름의 도로였으나 2017년 한국과 멕시코 간 협의를 통해서 개명된 것. 그도 그럴 것이 메리다는 2025년에 한인이 처음으로 이주한 지 120주년 행사를 개최했을 정도로 한인 이민의 역사가 오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인의 이민 역사를 다루는 박물관도 존재할 정도이니.
택시를 타고 메리다 시내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건물 한구석의 사무실 수준이었던 알타브리사 터미널에 비해서 건물도 신식이고 세련되었다. 내가 묵을 호텔은 터미널 바로 앞에 있었는데... 차라리 그냥 돈 좀 더 들여서라도 시내로 바로 올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여기서는 ADO 버스뿐 아니라 다른 회사 소속의 버스들도 많이 다니고, 그 덕에 교외의 관광지를 뚜벅이로 가는 경우에도 여기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게 된다.
알록달록한 파스텔톤의 메리다 시내. 일층이나 이층으로 된 파스텔톤의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비록 낡은 건물들이지만, 이런 것들이 있어서 올드타운의 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중앙 공원, 혹은 플라사 그란데 (Plaza Grande, 마야어로는 Jo'ile'ex Nojoch k'íiwik)에는 열대 수목이 잔뜩 심겨져 있어 안으로 들어가보고 싶었으나, 방문 시 광장이 공사중이어서 성당 옆을 걸어다니면서 흘겨보는 수밖에는 없었다.
시내에 오니 유럽식 건물들이 즐비했다. 이런 형태의 건물이 미국에서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많이 남아있지 않은 반면 아직 멕시코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나름 유카탄 반도의 최대도시인 만큼 극장도 있었고, 도시를 구경하는 맛이 확실히 있었다. 아무래도 주요 관광지와는 조금 떨어져 있는 곳이다 보니 사람들이 굳이 찾지는 않는 곳이지만, 나는 도시만 봐도 좋더라.
그나마 옆에 있는 산타 루시아 공원은 공사를 하고 있지는 않아서 멕시코식 광장형 공원의 멋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 사는 맛 나는 멕시코의 도시. 미국과 국경을 접해있음에도 이렇게 느낌이 다를 수 있다니.
잠시 숙소에 들어가서 잠을 자다가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뭘 먹을지 고민하다가, 그래도 메리다의 타코는 어떤지 궁금해서 한번 먹어보기로 했다. 왠지 모르게 미국 국기 비슷한 것이 그려진 삽화를 테마로 한 타코집이었다. 다른 곳의 타코보다 조금 더 비쌌지만, 그래도 배가 고파서 4개를 시켜 보았다. 거기에 자체 로고가 그려진 수제맥주를 팔길래 함께 주문했다.
그냥 비주얼만 봐도 여느 타코와는 달랐다. 보통 길거리에서 저렴하게 먹는 타코는 구운 고기와 양파, 고수 정도가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면, 그냥 여기는 이름만 타코지 토르티야 위에 요리가 올라가 있는 수준이었다. 특이하게 오른쪽 위에 있는 풀이 가득한 타코는 유카탄 지역에서 흔히 먹는 채소인 차야 (chaya)를 사용해서 만든 비건 타코였다. 시래기와 비슷한 식감이었는데, 요리 자체가 맛있으니 타코가 맛있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 여전히 메리다의 길거리는 북적였다. 간만에 제대로 된 도시 구경을 할 수 있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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