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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 공항에 새벽에 도착해서 미리 예약해둔 호스텔로 향했다. 대부분의 호스텔이 그렇듯 리마에서 가장 잘 정돈된 지역인 미라플로레스 (Miraflores) 지역에 있는 호스텔이었다. 미리 불렀던 우버를 타고 50솔 가량을 지불했는데, 새벽에 도착하는 항공편이 많다 보니 굳이 우버를 부르지 않아도 택시를 잡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내가 묵었던 파리와나 호스텔은 미라플로레스 한가운데 케네디 공원 바로 옆에 있어서 위치는 참 좋았다. 새벽 두시반이 되어서 도착한 숙소이지만 24시간 리셉션이 있어서 아무런 문제 없이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보안 때문인지, 출입문은 항상 잠겨있었고 벨을 눌러야 들어갈 수 있는 듯했다. (사실 내가 묵었던 대부분의 호스텔이 그랬다.) 숙소는 참 만족스러웠고, 옆 건물에 클럽이 있는지 밤에도 그 소리가 조금 들리는 점만 빼면 아주 괜찮았다.
이튿날이 되었고, 낯선 곳에 떨어진 여행자로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심카드를 사는 것이었다.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통신사는 클라로 (Claro). 내가 도착한 일요일은 클라로 대리점이 문을 닫기 때문에, 대신 길거리에 있는 휴대폰용품점에서 살 수 있었다. 심카드 자체 가격 20솔에 통신료 10솔을 냈더니 열흘 동안 3기가 정도를 쓸 수 있는 정도였다. 심카드 자체는 좀 비싸긴 한데 요금 자체는 합리적이었다.
그러면 리마 시내 곳곳을 본격적으로 둘러보자. 우선 숙소가 있던 미라플로레스 자체가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다.
이런 식으로 벽화가 그려진 건물도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산책하는 공원도 있었다.
길거리를 서성거리며 스타벅스도 들러 커피도 한잔 사먹고 여유로운 시간을 좀 보내다가,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남미에 오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페루의 수도 리마도 다른 남미의 관광도시와 마찬가지로 고지대에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여기는 바다 코앞에 위치한 낮은 곳이더라. 현재 사는 곳이 바다에서 워낙 멀다 보니,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라면 일단 달려가는 본능(?)이 생겨버렸다.
리마가 다른 해안가 도시들과 차이점이 한가지 있다면, 여기는 도시가 거의 절벽이나 마찬가지인 곳에 위치해 있어 바닷가에서 시내로 진입하려면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는 것. 그 때문인지 더욱 이국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바닷가에는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서핑이나 해상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을 더욱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산책로를 따라 조깅을 하는 사람들도 흔하게 볼 수 있었고, 주변으로 조성되어 있는 공원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내가 리마에 있었던 날은 일요일이었기에 주말을 맞아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산책로는 북적였다. 곳곳에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람들도 보였다. 다채로운 볼거리에 홀려 아무런 생각 없이 산책로를 걸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중국식 정원까지 걸었을 때, 순간 정신이 들면서 '더 걸었다간 돌아갈 때 지옥을 경험할 것이다'라고 되뇌이며 일단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좀 걸었더니 배가 고파졌다. 페루의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인 세비체를 꼭 먹어봐야겠다는 일념으로 맛집을 찾다가, 구글 지도에서 평 개수도 많고 점수도 높은 집을 하나 발견했다. Barra Maretazo라는 식당이었는데, 구글 지도로 사진만 봤는데도 플레이팅이 너무 예뻐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식당이 그날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남미 사람들이 음식을 늦게 먹어서인가 식당은 텅텅 비어있었다.
식당에 나 혼자 있어서인지 모르겠는데 주문을 하니까 우선 애피타이저로 타파스 사이즈의 음식들을 가져다 주더라. 새우가 들어간 듯한 세비체 샘플과 다른 이름 모를 음식 두 종류가 주어졌다. 음식이 생각보다 괜찮아서 이거 추가요금 받는 거 아닌지 걱정을 약간 했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냥 서비스로 주는 거였더라.
같이 주문한 페루의 대표 맥주인 쿠스케냐 (Cusqueña)를 마시며 좀더 기다리니, 내가 주문한 음식이 드디어 나왔다. 앞쪽에 칼라마리 튀김이 있고 세비체는 뒤의 음식이다. 칼라마리도 아주 맛있었고 세비체도 미국에서 먹었던 것보다 훨씬 나았다. 사이드로 삶은 옥수수, 고구마와 이름 모를 뿌리채소가 나왔다. 맛있게 먹고 50솔 조금 넘게 나왔던 걸로 기억.
점심도 먹었겠다, 이번에는 리마의 진짜 중심으로 가보자. 리마의 역사지구 (Centro Historico)에는 다른 남미의 도시들이 그렇듯 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역사적인 건물들이 위치해 있다. 당연히 리마에 머물면 한번은 방문해야 하는 곳. 하지만 미라플로레스에서는 꽤 멀어서 걸어서는 못 가고, 버스나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
웬만한 도시에서 택시를 타는 선택지를 최대한 피하는 나는 우선 버스를 도전해 보기로 했다. 리마의 버스 시스템은 두 가지가 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교통카드 찍고 타는 버스가 있는 동시에 노선번호도 알아보기 힘들고 차량 옆면에 경유지만 겨우 적혀있는 복잡한 노선체계의 미니버스가 있다. 다행히 미라플로레스에서 역사지구에 가기 위해서는 301번이라는 버스만 타면 되었다. 구글지도가 알려주는 것과는 다르게 내가 리마에 있었던 2023년 7월에는 2.2솔을 받고 있었다.
아 그런데 이 버스, 현금을 받지 않는다. 버스를 이용하는 현지인들 모두 교통카드를 가지고 있다. 다행히 나는 마침 버스정류장에 있었던 직원에게 2.5솔을 건네고 직원이 카드를 찍어줘서 탑승할 수 있었다.
페루의 다른 도시들도 마찬가지지만, 리마 또한 교통체증이 만만찮은 곳이다. 10km 조금 넘는 거리를 가는데 차로 한시간 가까이 걸린다. 만원버스에서 한참을 서있다가 내릴 수 있었다.
이쪽에는 전철...은 아니고 BRT 노선이 있는 듯 했는데, 여기서 교통카드를 구입할 수 있었다. 돈을 넣으면 카드 가격 (4.5솔이었나 그랬던 걸로 기억)을 빼고 남은 금액을 충전해 주는 듯했다. 정작 여기로 버스가 다니는 것은 보지 못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아르마스 광장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 있었고 광장 내부는 통제가 되어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퍼레이드를 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방문했던 7월 16일은 스페인어권 국가들에서 축하하는 비르헨 델 카르멘 Virgen del Carmen (이걸 뭐라고 번역해야 할지 모르겠다)의 날이라 했던 것 같다. 뒤에는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고 앞에는 성가대가 있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있었다. 한참을 홀린 듯이 구경하다가, 역사 지구의 다른 부분도 둘러보기로 했다.
역사지구 뒤편에 공원도 있길래 들러보았다. 특히 리막 강 건너 달동네가 보이고 산 꼭대기에 십자가가 하나 보였다. 올라갈까 잠깐 고민하다가 첫날부터 너무 무리하기는 싫어서 단념.
이제 슬슬 다른 곳으로 가볼까. 여러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았다. 리마는 안데스 산맥의 도시들에 비해서는 늦게 지어졌지만 그래도 몇몇 잉카 유적이 있어서 가볼 수는 있다. 미라플로레스 가까이 있는 Huaca Pucllana에 가보고 싶었는데 여기는 예약을 미리 해서 들어가거나 아니면 앞에 있는 고급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유적을 구경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던 듯.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 대신 선택한 것이 라르코 박물관.
여기는 교통편이 좋지 못해 사실상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 처음에 구글지도가 알려준 대로 미니버스를 기다려 보았으나, 한참을 기다려도 그 버스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택시를 타고 도착해서 박물관에 입장할 수 있었고, 박물관 입구는 호화 저택의 느낌이었다. 앞에 경비원이 있어서 관람객이 있을 때마다 문을 열어주는 형식.
35솔의 저렴하지는 않은 금액을 지불하고 박물관에 입장. 잉카 혹은 그 이전 시기의 도자기 유물들을 주로 전시해 놓은 곳이다. 개인이 수집한 유물들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정말 어마어마했다. 한시간 정도면 둘러볼 수 있는 규모였으나, 박물관 뿐만 아니라 내부 정원도 예쁘게 조성해 놔서 그걸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특이한 점으로 박물관 한구석에 위치한 에로틱 갤러리이다. 말 그대로 성적인 유물들을 한군데 모아 전시해 놓은 곳. 성행위를 묘사한 물건들도 있고 성기를 적나라하게 나타낸 유물들도 볼 수 있었다. 인간 뿐만 아니라 동물들의 성행위 모습도 작품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다시 미라플로레스로 돌아왔다. 리마의 또다른 명물인 바닷가에 세워진 대형 쇼핑몰인 라르코마르에 갔다. 아직 여행 초기였기 때문에 딱히 물건을 사지는 않았고, 안에 위치한 마트에서 잉카콜라를 팔길래 한병 구매했다. 페루에서는 코카콜라보다 더 잘 팔리는 잉카콜라이지만, 맛은 전혀 달랐다. 콜라와 비슷한 톡 쏘는 맛이라기보다는 비타오백이나 미에로 화이바 비슷한 드링크의 맛에 좀더 가까웠다고 표현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런데 이 녀석, 은근 중독성이 있어서 계속 먹게 되더라.
멀리서 바닷가의 야경을 바라보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 날 새벽부터 공항으로 떠나야 했기에 일찍 잠을 청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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