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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장거리 여객열차는 하루에 몇 편 다니는 암트랙이 전부인 곳이긴 하지만, 화물을 운송하기 위해 건설되어 있는 철도는 어마어마하게 길다. 그 선로를 따라 지나다니는 길이가 마일 단위인 화물열차를 보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런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화물을 실어나르기 위해 거대한 기관차들이 제작되는 건 당연한 이치.

 

출처: https://www.up.com/heritage/steam/4014/index.htm

 

물론 수많은 기관차가 있지만, 그 중 아마 가장 유명한 것은 1940년대에 생산된 증기기관차인 빅 보이 (Big Boy)일 것이다. 미국의 철도회사 중 하나인 유니언 퍼시픽 소속의 이 기관차는, 일반적인 기관차보다도 훨씬 거대하고 비행기의 크기에 비견될 정도의 몸집을 자랑한다. 게다가 요즘은 보기 힘든 증기기관차이니, 이 차량 하나가 얼마나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는 자명하다. 과거에는 여러 대가 다니고 있다가, 지금은 전부 폐차되거나 박물관행의 말로를 맞았으며, 그 중 4014호만이 복원되어 미국 전역을 누비고 있다.

 

빅 보이의 미국 중부 투어 경로. 출처는 밑의 스케줄 페이지.

 

마침 이 증기기관차가 미국 중부 투어(?)를 하면서 일리노이 주도 지난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 거대한 쇳덩이를 한번 직접 눈으로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열차 운행 스케줄이 유니언 퍼시픽 홈페이지에 게시되어있어 시간을 맞춰서 가볼 수 있었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번 투어는 10월 23일까지 이어져서 결국 와이오밍주의 샤이엔으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한다.

 

https://www.up.com/heritage/steam/schedule/index.htm

 

Union Pacific Steam Schedule

Big Boy No. 4014 will depart on the "Heartland of America Tour" on Wednesday, Aug. 28 from Cheyenne, Wyoming, and travel across nine additional states: Arkansas, Colorado, Illinois, Iowa, Kansas, Missouri, Nebraska, Oklahoma and Texas. The eight-week tour

www.up.com

 

 

스케줄을 맞춰서 간 곳은 일리노이 중부의 소도시 빌라 그로브 (Villa Grove). 여기의 조차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가는 일정이라고 해서, 도착 시간에 맞춰서 방문했다. 인구 2천여명밖에 안되는 사실상 한국의 면 수준의 작은 도시이지만, 빅 보이를 보기 위해 방문한 수많은 인파에 도시는 북적였다.

 

건널목 앞

 

겨우 주차할 곳을 찾아서 차를 세우고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향했다. 인파가 얼마나 거대했는지, 건널목 근처 도로는 아예 차량 출입이 불가능하도록 통제되어 있었다. 사람 모이는 곳에 빠질 수 없는 푸드트럭도 몇 대 와있었고, 몇몇 사람들은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서 한잔 하고 있었다.

 

 

건널목 가까이 다가갔는데, 마침 멀리서 기차 경적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흔하게 들을 수 있는 그 경적소리. 평소에는 귀찮은 소음 정도로만 여겼었는데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그 우람한 자태가 서서히 드러나자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를 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철도를 관리하는 직원이 사람들을 철도에서 떨어지게 하도록 통제를 하고, 천천히 열차가 건널목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영상 재생 시 소리 주의!

 

 

건널목을 통과하는 4014호

 

검은 몸집과 굴뚝으로 뿜어져나오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증기기관차는 어렸을 때 <토마스와 친구들>에서나 봤지, 실제로 운행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철도를 분리해주는 울타리 따위가 없었던 덕에 바로 눈 앞으로 열차를 관람할 수 있었다.

 

4014호 "빅 보이"

 

저 뒤에 'UNION PACIFIC'이라 적혀있는 부분까지 기관차이다. 흑요석을 연상시키는 검은 광택이 이 차량이 얼마나 강한 녀석인지 자랑하고 있었다. 기관사는 빅 보이를 맞이하러 온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었다.

 

4014호 기관차

 

 

유니언 퍼시픽의 열차

 

그 뒤로는 유니언퍼시픽의 상징인 노란색으로 칠해진 다른 열차들이 붙어서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말 그대로 사람들에게 열차 관람을 시켜주기 위해 운행하는 녀석이다 보니 외부 관리가 철저히 된 모습이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성조기 도장도 눈에 띄었다.

 

유니언 퍼시픽의 객차

 

그 뒤로는 객차가 붙어서 다니고 있었다. 내부를 슬며시 들여다봤는데 고급진 인테리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미국에서 도시권 간 정기 여객열차를 운행하는 곳은 사실상 암트랙이 전부이고 현재는 플로리다 내에서만 영업하는 브라이트라인 정도가 더 있으니,  유니언 퍼시픽의 저 여객열차를 이용해볼 일은 없다는 점이 아쉽다. 몇몇 정차지에서는 열차 내부도 공개하고 있는데, 여기는 그냥 하룻밤을 지내고 가는 정도이기 때문에 내부에 들어가볼 수도 없었다.

 

열차를 보내며

 

열차가 건널목을 완전히 통과하고, 마침내 맨 끝부분이 드러났다. 지나가는 열차를 보내며 사람들을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종종 발생하는 이런 이벤트가 미국 중서부 생활을 조금이나마 다채롭게 한다는 점이 참으로 좋았다고 느끼게 해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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