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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조식을 먹으러 dining room에 내려갔다. 그런데 갑자기 '런던에 왔는데 뮤지컬 한 번 보고 가야 하지 않겠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번쩍 스쳐 지나갔다. 사실 전날 밤부터 생각은 하고 있어서 '일어나자마자 tkts 가서 확인해 봐야지' 생각은 했지만 아침이 되니까 너무 귀찮아졌다.  그러다 꾀를 내었다. tkts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무슨 표가 남았고 가격은 얼마나 하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역시 옳은 생각이었다. tkts.com에 들어가면 며칠날 얼마나 표가 풀리는지 정리되어 있다.


인기 뮤지컬 (맘마미아, 오페라의 유령 등)은 역시 좋은 자리는 없는 데다가 비싸기까지 했다. 싼 가격에 팔리는 표들은 다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뮤지컬들이었다. 그와중에 내 눈에 들어온 뮤지컬이 하나 있었다. '아가씨와 건달들'. 꼭 한 번 보고 싶었던 뮤지컬이었다. 가격도 비싸지 않고. 이른 아침부터 tkts에 가기는 귀찮았기에 꾀를 한 번 더 내었다. 한국에서 공연을 보러 갈 때 인터넷으로 미리 예매를 하듯이 여기서도 그렇게 예매하면 되지 않을까? 이 생각 또한 옳았다. 인터넷으로 25파운드에 뮤지컬 표를 하나 구할 수 있었다.



표를 산 다음 아침을 먹으며 여유를 부리다가 적당히 호스텔 밖으로 나왔다. 맨 처음 간 곳은 전날 문을 닫아 구경을 제대로 못한 버로우 마켓. 꼭 가 보고 싶은 곳이었기 때문에 바로 갔다. 원래 아침에 버킹엄 궁전부터 가려 했지만.. 하루 더 미루어졌다.



전날 갔던 캠든 마켓과는 달리 버로우 마켓은 음식 위주라 옷 같은 거 살 돈 없는 나레기에게는 오아시스같은 곳이었다. 아침을 먹고 와서 처음에는 배고프지 않았지만, 눈에 들어온 상점이 하나 보였다. Pimm's라는 칵테일과 상그리아, 그리고 프로세코를 파는 곳이었다. 4파운드, 당시 환율로 7천원이나 하는 자비없는 가격이었지만, 예전부터 Pimm's의 맛이 무척 궁금했던 나는 거금을 내고 한 잔 샀다.



원래 Pimm's는 리큐르의 이름이지만, 그 리큐르에 과일을 몇 조각 넣고 소다를 부어 동명의 칵테일을 만들어 마시기도 한다. 맛은... 수박화채랑 비슷한 맛이었다. 알코올이 많이 들어있지는 않아 부담스럽지 않게 마실 수 있는 양. 마시면서 둘러보니 어떤 분은 프로세코 한 잔을 사서 마시고 있더라.



파는 음식의 종류도 다양하고 국적도 다양하다. 쫀득쫀득 터키시 딜라이트를 파는 가게도 있었지만, 한 조각 집어먹기만 하고 사지는 않았다. 입을 녹여버릴 정도로 달콤한 마카롱도 있었지만, 역시 사먹지 않았다. 빠에야를 파는 가게에서 한 숟가락 주길래 먹어봤는데, 정말 환상적인 맛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이후에 여행한 스페인에서도 그렇게 맛있는 빠에야를 먹어보지 못했다. 역시 영국은 영국 요리 빼고 다 맛있나 보다.



슬슬 배고파지려던 참, 뭘 먹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다가 에티오피아 음식을 파는 부스를 발견했다. 에티오피아 음식이라. 동아시아 쪽 음식은 늘 먹던 음식이고, 동남아 음식은 몇 달 동안 많이 먹었고, 유럽 음식은 앞으로 한 달 넘게 먹을 음식이다. 그런데 아프리카 음식은 한 번도 먹어보지 않고 먹을 일이 정말 드물 것이다.  도대체 무슨 맛일까?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던 나는 얼른 수많은 사람들 뒤에 서서 내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메뉴가 다양하지 않아 결정장애가 올 걱정이 없었고, 나는 닭고기, 시금치, 콩이 들어간 라지 메뉴를 6파운드에 샀다. 한국 돈으로 만원이지만.. 여긴 영국이니까.



저 반찬(?) 아래쪽에는 쌀밥이 들어있고, 바닥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빵과 떡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한 스펀지 모양의 뭔가가 깔려 있었다. 밥과 반찬은 예상이 가는 맛이었지만 빵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시큼한 맛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빵은 '인제라'라고 불린다고 한다. 손으로 인제라를 적당한 크기로 뜯은 뒤 음식을 올려서 함께 먹는 것이라고 하는데, 서양 문화와 맞게 숟가락으로 먹을 수 있게 해 놓았다.



난생 처음 먹어보는 맛을 경험한 뒤 버로우 마켓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간판에서 WOKI 뒤는 어떻게 읽는 걸까? 한글 ㅈ처럼 보이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알파벳은 떠오르지 않았다. 가게 이름으로 봐서 중국 느낌 나는 그런 요리를 파는 모양이다. (Wok는 중국 요리를 만들 때 쓰는 냄비를 뜻한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 버로우 마켓과 그 주위에 중국인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정말 많이 돌아다녀서 의아했었다. 처음에는 관광객인가 했는데 보면 볼수록 관광객 느낌은 안 나고. 대부분은 동양인끼리 다니는데 일부는 서양 사람들도 섞여서 다니고 있고. 내가 내린 결론은 그 사람들은 유학생 아니면 중국계 영국인이라는 것이다. 근처에 Kings College 캠퍼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커피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에게 카페는 하루에 한 번은 들러주어야 할 필수코스. 마침 버로우 마켓 근처에는 몬머스 커피(Monmouth Coffee)라는 유명한 커피 전문점이 있었다. 필터 커피 한 잔을 시켜서 어디 앉아서 마시려 했으나, 가게가 무척 좁고 사람이 북적여서 잠깐 마시다가 가게 밖으로 나섰다. 이래봬도 오늘은 바쁜 나라구!


커피를 들고 향한 곳은 마찬가지로 런던 브릿지 근처에 있는 테이트 모던. 대영 박물관이 여러 유물들을 모아놓은 곳이고 내셔널 갤러리가 주로 고전풍 미술품들을 모아놓은 곳이라면 테이트 모던은 현대미술을 주로 감상할 수 있는 미술관. 과거에 공장이었던 곳을 뜯어고쳐 미술관으로 만들었다는데, 정말 겉모습은 박물관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현대는 이런 전시까지도 스폰서 한다. 영국 사람들은 현대가 한국 기업인 것을 알기는 할까?



조금만 더 늦게 갔으면 새로 개장한 더 높고 거대한 테이트 모던을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창문 밖으로 공사를 거의 마치고 미술품을 설치할 공간으로 탈바꿈할 공장의 남은 공간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박물관에서 카메라 들이대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서 사진은 거의 찍지 않았다. 오히려 사진을 안 찍으면 그림을 감상하고 설명을 읽는 데 집중할 수 있어서 더 보람차게 관람할 수 있는 것 같다. 사진은 없지만 테이트 모던을 관람하는 데만 세 시간을 넘게 썼던 것 같다. 만약 증축된 테이트 모던에 갔다면 얼마나 오래 있었을까..? 탬즈 강가에 지어진 미술관인 만큼, 밖으로 탬즈 강과 런던 시내를 전망할 수 있다. 저 특이한 모양의 다리는 Millennium Bridge라고 한다. 이름대로 21세기를 맞아 새로 지은 다리라고. 저 뒤에 세인트 폴 대성당도 보이는데, 세인트 폴 대성당에 가지 않았다는 걸 귀국한 이후에 깨달았다;;





이번에는 좀 다른 곳으로 가 볼까? 외국에 나올 때 가끔씩은 몇몇 도시의 유명한 대학을 들르곤 했다. 이번에는 런던의 이공계를 대표하는 Imperial College를 잠깐 들렀다. 지하철을 타고 South Kensington 역에 내리면 된다. 역 자체는 지하에 있는데 승강장은 뚫려 있는 형태를 한 것이 신기하다.

이 주변에는 자연사 박물관이나 과학관 등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박물관이 더 있었지만, 꽤 늦은 오후여서 그냥 지나치기만 했다.



굉장히 작은 캠퍼스 안에 이것저것 마구 쑤셔넣은 느낌이다. 캠퍼스가 너무 작아서 고등학교라고 해도 믿을 정도... 까지는 아니지만 확실히 작긴 작았다. 사실 서울만 해도 그렇게 작은 대학이 꽤 있으니..



Imperial College는 Royal College of Music과 붙어 있다. 저 위의 동그란 건물은 그 음악대학에 있는 Royal Albert Hall.



입구부터 멋있는 Imperial College



South Kensington 역으로 돌아가지 않고 반대편으로 향했다. 왜냐하면 Hyde Park가 있기 때문이지. 이 공원고 규모가 정말 컸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제대로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전에도 밝힌 적 있는 것 같지만, 유럽의 새들은 정말로 사람을 안 무서워한다. 사람을 안 무서워하는 것은 괜찮은데, 사람 다니는 길바닥에 똥이 널브러져 있었다. 멍하니 새들을 쳐다보고 있다가 갑자기 어디선가 솟구친 역겨움에 자리를 떴다.



비가 오네 마네 하는 우중충한 날씨라 그런지 공원에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큰길을 따라 걷다가 샛길로 빠지기도 하고 결국 공원의 반대편으로 빠져나왔다.



다시 런던의 중심가로 왔다. 해리 포터 어쩌고 하는 것이 있어서 뭔가 했는데, 극장이었다.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는 뮤지컬로 상영이 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뮤지컬이 시작하기까지 얼마 안 남아, 급하게 피시 앤 칩스를 사먹었다. 안에서 먹기에는 부담이 되어 포장한 뒤 길거리에서 먹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먹는 데 고생했다. 극장 뒤쪽에 있는 건물 앞 계단에 걸터앉아 먹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쳐다봤을까.



뮤지컬 시간에 맞춰 겨우 입장했다. 알고 보니 내가 앉은 자리는 맨 뒷자리. 괜히 가격이 싼 게 아니었다. 그래도 극장의 크기가 작아서 보는 데 불편하지는 않았다. 자막 그런 거 없이 모든 게 영어라서 극의 내용을 100% 이해한 것은 아니라 약간 아쉬웠다.


뮤지컬이 끝난 뒤 밖에 나오니 해가 완전히 져버렸다. 런던에서, 아니 영국에서 맞는 마지막 밤이다 보니 야경을 놓칠 수는 없지. 여태까지 아껴 둔 마지막 명품 야경을 보러 타워 브릿지로 향했다.





타워 브릿지에 있었던 사람의 70% 이상이 한국인이었던 것 같다. 대학생 방학 기간 전이라 유럽에 여행하는 한국인이 많지 않을 줄 알았는데, 한국인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한 내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후에 듣기로는, 요즘에는 5월부터 유럽 여행 성수기라고.. 



야경을 감상한 후 숙소로 돌아가는 길. 바닥에 왠지 모르게 반짝이는 조명을 설치해 놓았다. 괜히 별빛마냥 반짝이는 불빛에 내 감성을 불태우고 마지막 날 밤을 보냈다.





아직 영국도 못 벗어났다... 다 쓰려면 1년은 넘게 걸리려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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