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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은 5월 30일 월요일, 영국에서 Bank Holiday라 불리는 휴일이다. 과거에 은행이 쉬는 날이었다는 데에서 유래됐다나 뭐라나... 이 날은 런던에서 좀 떨어진 Gloucester라는 곳에서 그 유명한 '치즈 굴리기 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런던 일정을 짤 때 '그 유명한 대회 한 번 가볼까?'라고 잠깐 생각을 했으나, 런던에서 글루스터까지 가는 교통편이며 (영국의 물가는 살인적인 것으로 유명한데, 교통비는 살인적인 것을 넘어서 행성파괴적으로 끔찍하다..), 치즈 굴리는 거 한 번 보겠다고 고작 4일밖에 되지 않는 런던에서의 아까운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이내 단념하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오전 11시에 열리는 버킹엄 궁전의 교대식을 보러 갔다. 다행히도 버킹엄 궁전은 빅토리아 역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어서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호스텔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여유롭게 먹은 뒤 문을 나섰다. 빅토리아 역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궁전의 정문이 나온다.
저 파란 간판 가게 이름이 "Pronta 'A' Mangia"... 아무리 생각해도 영국 어디에나 많은 샌드위치와 샐러드 등을 파는 가게인 Pret A Manger를 따라한 것 같다. 찾아보니 Pret A Manger는 프랑스어고 파란 간판은 이탈리아어로 둘은 같은 뜻인데..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가는 날이 장날. 왠지 모르게 버킹엄 궁전의 정원에 분홍색 펜스가 사진처럼 쳐져 있었다. 무슨 경주 대회가 있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그냥 평범한 마라톤 대회인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이름 모를 바퀴 달린 기구 위에 앉아서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10분 뒤 일어난 일은..!
일단 정원을 둘러보았다. 조각 위에 금칠을 한 새가 올라가 있었다.
많지는 않지만 몇몇 사람들이 궁전 안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그 이유는
이 날 교대식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하절기에는 교대식이 매일 열린다는데, 하필 내가 버킹엄 궁전에 간 날 이 특별한 일이 떡하니 벌어져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 고작 몇십 명의 사람들만이 버킹엄 궁전에 있었던 이유였다.
발걸음을 돌려 기념품점이나 잠깐 들렀다. 귀여운 왕실 코기 인형을 팔고 있었다. 강아지 인형이 너무 귀여워서 사려고 집어든 순간, '16파운드'라는 어마무시한 가격표가 딸려나오는 게 아닌가. 가난한 여행자에게 이런 기념품은 사치이다. 물론 기념품을 사면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지만, 차라리 사진을 몇 장 더 찍어서 훗날 감상하며 '이때 이런 곳에도 갔었지.' 하는 게 나에게는 더 와닿는다.
어제 못 갔던 웨스터민스터 사원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세계에서 첫 번째로 개통된 지하철인 만큼 승강장은 냄새나고 지저분하며 열차는 녹슬고 느릴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달리 승강장과 열차 모두 깔끔했다. 후에 여행한 다른 곳들의 지하철과 비교해도 런던이 나은 수준. 열차가 좁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예상대로 웨스터민스터 사원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건물을 자세히 보니 군데군데 색이 다른 벽돌이 섞여있어, 왠지 오래된 고딕풍의 건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느낌. 물론 건물 전체에서 느껴지는 고풍스러움은 변함없다. 이 사원의 한 가지 단점은, 무시무시하게 비싼 입장료. 무려 20파운드나 되고, 학생할인을 받아도 17파운드이다. 잠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데, 이 사원 입장료로 하루에 얼마가 모일까?'라는 상상을 해 보고 들어갔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온 나에게 위로라도 해 주듯, 오디오가이드를 무료로 나누어주었다. 관람 순서가 엄격하게 정해져 있어서 화장실을 갈 때도 안에 있는 신부에게 말을 해야 한다.
사진 찍는 것도 금지돼 있어 오디오 가이드로 각각 부분에 대한 설명을 들은 것으로 만족. 의외라고 느껴졌던 부분은 이 사원은 왕의 대관식이 열린 곳일 뿐 아니라 셰익스피어와 뉴턴 등 문학이나 과학 분야에 이바지한 사람들이 묻혀 있는 곳이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나온 뒤, 지하철을 타고 캠든 타운으로 갔다. 캠든 타운은 2존에 위치하여 런던 시내에서는 약간 떨어진 곳이다.
맥도날드와 KFC가 각자 자기네 가게에 화살표를 갖다대고 경쟁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찾기 힘들더라도, 유럽 어느 곳을 가도 맥도날드는 적절한 장소에 놓여 있었다. 무료 와이파이와 무료 화장실을 제공해 주는 유럽 여행의 오아시스이다. 여행 초기에는 몰랐지만.
캠든 마켓이 서울의 광장시장 같은 곳일 것이라는 상상을 한 나는 제대로 헛다리 짚었다. 길이 정돈돼 있고 깔끔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가게가 옷을 팔고 있었고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차라리 길거리에 있는 기념품 가게나 반대편에 있는 시장 비슷한 골목을 구경하는 게 더 재미있었을 정도. 마침 기념품 가게에 영국용 어댑터를 팔길래 샀다. 처음에 5파운드를 부르길래 '제정신인가?' 하고 3파운드에 흥정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흥정해서 샀는데도 유럽 여행 전 다이소에서 샀던 여행용 어댑터 가격(5천원이고, 영국 뿐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나라를 지원한다)과 같은 수준..
딱히 먹을 게 없어서 들어간 집. 런던치고 저렴한(그래도 비싸다) 가격에 파스타와 피자를 파는 곳. 5.99파운드를 내고 라자냐를 사먹었는데, 무려 한국 돈으로 만원이다.. 외식비 비싼 나라를 여행하는 것이 거의 처음이라 이런 물가가 적응이 잘 안 된다.
점심을 때우고 돌아오는 길에 파운드랜드가 있길래 한 번 궁금해서 들어가 보았다. 한국의 다이소처럼 많은 물건이 1파운드에 팔리는 곳. 혹시 내가 필요한 물건이 있는지 살펴보았으나 없었다. 음료수도 저렴한 (두 캔에 1파운드였나?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건 맘에 들었음. 그러고보니 여행 초기에는 물의 소중함, 그리고 정말 급할 때 보이는 물의 어마무시한 가격을 몰랐다. 서양인 여행자들이 여행 중 커다란 물병을 들고 ㄷ니는 이유가 다 있음.
파운드랜드에서 살 게 없어서 나온 뒤 다시 캠든 타운 역 쪽으로 가는데 아까 전만 해도 없었던 폴리스 라인이 버거킹을 비롯한 블럭에 쳐져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도둑이나 강도가 든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폴리스 라인 볼 일이 거의 없는데 영국에서만 두 번 보았던 것 같다. 한국이 안전한 나라가 맞긴 하나 보다. (강력범죄율은 한국이 높다는 말도 있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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