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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다에서 지내는 마지막 날, 귀국 비행기를 타기 위한 공항이 있는 칸쿤으로 가기 위해 원래는 아침 일찍 떠날까 했다. 중간에 치첸이트사에 들러서 유적 구경을 하고 저녁에 칸쿤으로 가서 하룻밤 지내면 가장 이상적인 스케줄이 되기 때문. 하지만, 나는 메리다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메리다 시내에 위치한 한인 이민사 박물관을 꼭 방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느즈막히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메리다에 좀더 머물러보기로 결심했다.

 

 

 

우선 아침식사부터 하기로. 시내에 사람이 많아보이는 브런치 집이 있어보여서 들어갔다. Café La Habana라는 이름의 이 식당은, 찾아보니 멕시코시티에 본점을 둔 나름 인기 있는 카페로 보였다. 이 메리다 분점도 인기가 많은 듯 하고. 아니나 다를까, 금요일이었지만 아침부터 식사를 하는 사람들로 나름 식당 내부가 혼잡했다. 대부분은 현지인으로 보였는데, 저 사람들은 동양인 혼자 앉아서 멍하니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잠시 뇌리에 스쳐지나갔다.

 

 

아침식사 (desayuno) 메뉴가 몇 가지 있었다. 스페인어는 한해 전 남미 여행 직전에 잠깐 듀오링고로 공부했던 게 전부이지만, 그래도 영어와 유사점이 좀 있기 때문에 써있는 것으로 아주 약간은 뜻을 유추할 수 있었다. 당시 여행한 지 1년이나 지금 지금으로서 확실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3번 메뉴를 골랐던 걸로 기억한다. 계란은 반숙 (estrellado) 혹은 스크램블드 (revuelto) 두 가지 선택이 있었는데, 그 중에 나는 스크램블드로 주문을 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15번과 16번 메뉴의 재료로 표기된 moros y cristianos라는 콩밥 비슷한 요리가 쿠바의 전통 요리 중 하나라던데, 미리 찾아봤다면 이걸 주문해봤을 듯 하다.

사진 출처: https://www.cookingpal.com/blogs/recipes/moros-con-cristianos

 

어느 식당에 들어가도 애피타이저로 나오던 토르티야 칩 대신, 이번에는 빵이 등장했다. 아 물론 멕시코 아니랄까봐, 버터 말고도 매운 고추로 만든 녹색 소스인 살사 베르데 (salsa verde), 그리고 토마토, 고수, 양파 등으로 만든 일종의 소스인 피코 데 가요 (pico de gallo)가 곁들여져 나왔다. 

 

 

오렌지 주스와 커피. 사실 미국의 다이너에 가면 먹을 수 있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긴 했다. 그래도 옆나라이니 어느 정도 비슷한 문화가 있나? 오렌지 주스는 한번 마시면 끝이지만, 커피는 웨이터가 돌아다니면서 다시 채워주곤 했다.

 

 

내가 먹은 아침식사. 주식인 토르티야 칩이 소스에 적셔진 형태였다. 저 토르티야를 요리의 일종으로 바라봤을 때에는 은근 낯설게 다가왔지만, 멕시코에 지나고 며칠이 되어서야 이 녀석이 한국인이 매 끼마다 쌀밥을 먹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계란과 토르티야 위에 토마토 베이스의 소스를 올리고 치즈까지 뿌려서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식당에서 천천히 커피도 한잔 하면서 무더위를 맞이할 채비를 하고, 슬슬 걸어서 도착한 한인 이민사 박물관 (Museo Conmemorativo de la Inmigración Coreana). 따가운 햇볕과 찌는 습기를 온 피부로 맞이하며 30분 가량 걸어서 도착한 곳. 박물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는 있지만 사실 규모는 작고, 길가에 1층짜리 건물 하나가 전부이긴 했다. 운영 시간이 적혀있지만, 다른 블로그 후기에 의하면 실제로 닫혀있어서 허탕을 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처음 도착을 했을 때 입구를 가로막는 거대한 철창에 압도되었으나, 알고 보니 열려있는 상태였고 철창을 열어 입장할 수 있었다. 들어가 보니 한인 이민자의 후손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지키고 있어서 환영해주셨다.

 

 

입구에 방명록이 있어서 이름과 출신 지역을 적게 되어있었다. 나도 이름과 나이, 그리고 출신 지역을 적고 입장했다. 내부는 그렇게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간단하게 한인들이 멕시코에 정착하게 된 계기에 대해 소개되어 있었다. 반대쪽에는 기부함이 있었는데, 멕시코의 한인 사회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가지고 있던 페소 일부를 넣었다.

 

 

1905년 유카탄의 한인들. 이름들을 보니 영락없는 한국인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으나 상당히 이국적인 이름도 많이 보였다. 현재 한인들의 후손 대부분은 한국어도 구사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여전히 한국과 유카탄 지역의 교류는 계속될 것이다. 

 

 

박물관 내부에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 놓은 공간이 있었다. 에네켄을 수확할 노동자를 모집하기 위한 일환으로 한인들을 이역만리 멕시코로 보낸 것인 만큼, 벽에 걸려있는 그림도 에네켄이 눈에 선하게 들어왔다. 20세기 초 한인들은 멕시코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는 알고 있었을까? 스페인어는 한 글자라도 알고 있었을까? 아무 것도 모른 채 태평양 건너 낯선 지역에 정착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21세기를 사는 입장으로서는 그저 상상만 할 뿐이다.

 

 

한인이 멕시코에 이주하게 된 역사를 소개한 책들도 있었다. 그 중에는 전에 읽었던 적 있는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도 있었다. 군복무 시절 읽었던 책이었는데, 타 지역으로의 이동이 제한된 환경에서, 백년도 더 전에 배에 몸을 싣고 태평양을 건너고 이름도 처음 들었을 묵서가에 도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너무나도 흥미로웠다. 유카탄 반도를 여행하는 중에 굳이 메리다에 더 오래 있게 한 가장 큰 계기가 된 책이기도 하고.


 

 

다시 시내로 돌아가는 길에 시장을 들렀다. 과거에 실크로드를 여행하며 바자르를 돌아다니며 여행했던 경험 덕인지,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을 가든 전통시장을 들러보는 것은 항상 흥미롭다. 유카탄에서 가장 큰 메리다답게 여기도 전통시장이 있어서 어김없이 들를 기회를 가졌다. 산 베니토 시장 (Mercado San Benito)라는 이름의 시장이다. 

 

메리다 산 베니토 시장

 

시장을 방문할 때마다 농산물들을 살 수 없는 게 참 아쉽다. 지역의 특산물들을 눈앞에서 구할 수 있는 기회이지만, 국제선 항공편을 타려면 검역을 거쳐야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눈으로만 즐기고 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뱃속에 들어간 것들을 빼앗아갈 수는 없기 때문에 아쉬움을 달래고자 시장의 음식을 점심으로 먹기로 했다.

 

 

코카콜라에서 가게 영업을 지원해줬는지 온 가게에 코카콜라가 도배된 야외 노점이 있었다. 보아하니 식사를 하는 대부분이 현지인이었다. 역시 현지인들이 식사하는 곳을 가기 위해선 시장이 최고. 역시 타코를 파는 가게였는데, 고기를 굽는 화려한 불꽃의 향연에 불나방마냥 홀려서 붉은 테이블에 착석할 수밖에 없었다.

 

타코

 

아니나 다를까, 북적이는 손님에 순식간에 음식이 준비되는 속도,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고기 굽는 화로, 거기에 저렴한 가격까지. 역시 시장에서 먹는 타코는 후회를 할 수가 없다. 불판에 구운 카르네 아사다 (carne asada)를 넣은 타코와 고깃덩어리를 중동 방식으로 돌려가며 구운 알 파스토르 (al pastor) 타코, 둘 다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거기에 식당을 후원(?)해준 코카콜라 한 병까지. 메리다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즐기는 식사였다. 테이블의 냅킨 통에 팁 (propina)을 달라는 사인이 있었지만... 미국의 영향을 짙게 받아 팁 문화가 활성화된 멕시코이니, 이 정도는 뭐.

 

메리다 시장

 

시장 구경을 조금 더 하다가 나왔다. 이제 정말 메리다를 떠난다. 비록 치첸이트사도 못 가고 아쉬운 여행이었으나, 이는 다시 오리라는 명분이기도 하지 않는가. 다음날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이 위치한 칸쿤으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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