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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미얀마

[미얀마 여행] 다시 양곤으로 돌아오다

여행하는 화학자 2020. 12. 29. 15:48

2019. 12. 31. 미얀마 양곤.

 

만달레이에서 야간버스를 타고 다시 양곤으로 돌아왔다. 만달레이에서 저녁에 출발해서 양곤에 새벽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공항에서 비행기는 다음 날 새벽에 있으니 하루동안 갈 곳이 없었다. 너무 피곤하기도 했고 씻지도 못해 찝찝한 상황이라 일단 미리 예약해둔 허름한 호스텔에 들어갔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빠르게 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술레 파고다 버스정류장에서 가까운 숙소로 정했는데, 시설은 형편없었지만 다행히 아침에 체크인이 가능했고 그날 늦은 저녁에 미리 체크아웃을 하고 나갈 수 있었다.

 

만달레이에서 양곤 가는 버스

 

아침의 양곤 버스터미널. 굉장히 혼잡했다.

마침 내가 하루 짐을 풀어놓았던 숙소는 양곤에 처음 왔을 때 먹었던 999 샨누들과 가까웠던 곳이라 이번에는 지난번의 일반 국수가 아닌 그 스티키 누들을 먹고 잠깐 숙소로 돌아와 쉬었다. 버스에서 제대로 못 잤기 때문에 잠깐 눈 좀 붙일 수 있었다. 자고 일어나서 지난번에 시간이 없어서 못 봤던 양곤 순환철도를 이용해보기로 했다. 양곤 기차역은 술레 파고다 쪽에서는 조금 걸어야 하지만 못 걸을 거리는 아니다. 철도를 발견하고 일단 가보았는데 메인 스테이션이 아니었다. 메인 스테이션은 철도 북쪽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술레 파고다에서 걸어가면 중간에 다리를 건너야 한다.

 

멀리 승강장이 보인다.
양곤 기차역

기차표 가격은 한화로 200원 정도였나, 매우 저렴했다. 기차역에는 다양한 기차가 오갔는데, 다른 지역으로 향하는 열차를 타는 승강장과 순환열차를 타는 승강장이 분리되어 있었다. 승강장 한켠에 시간표가 있었는데, 물론 기차는 시간표를 전혀 지키지 않고 한참 기다려서 왔다. 일본에서 수입해온 중고 열차를 개조해서 쓰는 모양이었다.

 

양곤 기차역 승강장
일본 기후(岐阜)로 향하는(?) 열차

열차 내부도 물론 일본에서 가져온 것들을 떼어내지 않고 사용하고 있었다. 일본어로 된 안내문 아래에 미얀마어 안내문을 그대로 붙였고, 일본 시골 열차에서 볼 수 있는 요금표를 떼어내지 않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일본에 간 지 한참이었기 때문에 나름 신선한 경험이었다.

 

열차 내부
일본에서 그대로 가져온 요금표.

열차 내부는 말 그대로 미얀마의 서민들의 삶의 모습 그 자체를 볼 수 있었다. 나물 파는 아주머니도 타고 보따리상인도 탄다. 저렴하게 양곤 내부를 오갈 수 있는 교통수단이다. 관광객에게는 단순히 교통수단일 뿐 아니라 양곤의 다양한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매개체의 역할도 하고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내가 양곤에 갔던 당시는 순환철도 일부 구간이 공사를 하고 있었던 지라 일부 구간이 끊겨있었다는 점이다. 덕분에 종착역이 생겨버렸고 내린 뒤 그냥 그 열차를 다시 타고 양곤으로 돌아왔다.

 

열차 내부의 풍경

배가 고파져서 간단하게 인도음식으로 한 끼 해결. 미얀마의 인도음식도 퀄리티가 나쁘지 않았다.

 

이름 모를 식당에서 먹었던 인도 음식

양곤에서의 마지막 방문지는 양곤에서 가장 유명한 곳인 쉐다곤 파고다. '쉐'는 황금이라는 뜻이고 '다곤'은 언덕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원래 국립박물관을 먼저 관람하고 천천히 가려고 했는데 하필 박물관이 문을 닫은 날에 방문해버려서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박물관에서 쉐다곤파고다까지 바로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이 없어서 고민하다가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역시 여행은 고생하는 맛이 있어야 한다. 하여튼, 입장료를 낸 뒤 파고다에 올라갈 수 있었다. 무려 엘리베이터까지 설치되어 있어서 계단을 올라가는 고생을 하지 않고도 파고다를 즐길 수 있었다.

 

쉐다곤 파고다 입구

마침 내가 방문했던 때는 연말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파고다에서는 딱히 뭔가를 하려고 하지는 않았고 그냥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그 분위기를 한참 동안 멍하니 느꼈다. 이번 여행이 끝나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아쉬움을 살짝 가슴 속에 품은 채로. 쉐다곤 파고다는 이름답게 탑 전체가 금으로 뒤덮여 있었다. 다른 나라의 불교와는 달리 화려함으로 승부하는 미얀마의 불교. 물론 이 화려함은 오로지 부처에게 돌아가는 것이고, 승려들의 삶은 소박할 따름.

 

쉐다곤 파고다
쉐다곤 파고다
쉐다곤 파고다

해가 조금씩 기울어가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파고다로 몰려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절을 하고 있는 모습이 미얀마인들의 불심을 대변하고 있었다. 종교가 사람들의 삶에 깊숙히 파고들어갔지만, 여러 나라에서 종교가 사람들의 욕심을 채우는 데 이용된 것과는 달리 여기서는 그 종교가 사람들을 이롭게 할 뿐이었다.

 

사람들이 절을 하고 있다.

시간이 더 지나자 사람들이 초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불교 신자도 아닌 주제에 호기심 삼아 같이 불을 붙이는 건 예의가 아니라 생각해서 그냥 지켜보기만 했지만, 사람들이 피워낸 수많은 촛불들이 파고다 주위를 감싸는 모습은 감탄할 만했다.

 

한 관광객이 초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해가 지고 슬슬 저녁시간이 되어 기념품도 살 겸 해서 다시 양곤 다운타운에 왔다. 보족 아웅산 마켓 맞은편에 있는 정션시티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쇼핑몰에 들어갔다. 불교국가답지 않게 크리스마스 장식이 한창이었다. 실제로 미얀마에서는 크리스마스가 휴일이라는 것 같다. 영국에게 지배를 받았던 영향일까.

불교 국가인 미얀마와는 어울리지 않는 크리스마스 장식

저녁으로는 인도네시아 음식인 ayam penyet (한국어로 뭐라 적는지 모르겠다)을 먹었다. 싱가포르에서 지내던 때 자주 먹었던 음식이라 추억삼아 시킨 음식이다. 닭다리와 허벅지를 튀기고 거기에 두부튀김을 곁들이고 삼발소스와 함께 내어주는 인도네시아 음식 그 자체. 저녁을 해결하고 나서는 지하에 내려가서 한국에 가져갈 기념품을 좀 알아보았다. 비싼 걸 사는 대신에 미얀마 밀크티를 좀 사갔다.

 

Ayam penyet

밤이 깊고, 숙소에서 매우 이른 체크아웃을 마쳤다. 다시 술레파고다 버스정류장에 가서 공항버스를 타고 양곤 공항으로 왔다. 24시간 하는 공항버스는 관광객들에게는 공항을 오갈 때 택시기사와 실랑이를 하는 불편함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매력덩어리 그 자체.

 

양곤 공항

규모가 아주 크지는 않았지만 면세점도 있고 기념품점도 있고 나쁘지는 않았다. 물론 기념품은 시내에서 사는게 가장 저렴했다.

 

양곤 공항 면세점

비행기가 출발한 시각은 1월 1일 자정을 넘어서였기 때문에 나는 공항 탑승구 앞에서 새해를 맞게 되었다. 새해를 맞는 분위기는 미얀마도 한국과 별다를 게 없었다. 중국 항공사를 탔기 때문에 탑승구에 중국인들이 많았는데 다들 새해를 기쁘게 맞이하는 분위기였다. 물론 이때는 2020년이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몰랐겠지만.

 

2020년 새해는 공항에서.

이렇게 짧았던 미얀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보통 미얀마는 땅이 넓기 때문에 열흘 이상 길게 여행을 가는 편인데,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지라 일주일로 일정을 줄여서 빡빡하게 다닌 게 아쉬웠다. 덕분에 수많은 보물같은 장소들을 마음 속으로만 그린 채 남겨두고 미얀마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2016년부터 꿈에만 그려왔던 미얀마, 정말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는 뭔가 다른 멋진 곳이었다. 이제 비행기를 타고 상해에 잠깐 들른 뒤 한국에 가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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