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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 31. - 11. 2. 이란 테헤란
아스타라 버스터미널에서 약 8시간, 바쿠에서는 20시간 정도 걸려서 겨우 테헤란에 도착했다. 대도시답게 시내에 여러 군데의 버스터미널이 있었고, 그 중 내가 도착한 터미널은 서부 터미널이라고도 불리는 아자디 터미널. 숙소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었다. 터미널 바로 앞에는 나름 멋지게 생긴 건축물인 아자디 타워 (아자디는 페르시아어로 자유라는 뜻)가 있었는데, 그냥 광장 한가운데 조형물 하나 있는 수준이어서 멀리서 보는 수준으로 끝냈다.
지하철을 타러 Meydan-e Azadi 역으로 내려갔다. 이슬람 율법이 강하게 적용되는 나라답게, 지하철 양쪽 끝칸은 여성전용이었다. 딱히 여성전용이 아닌 칸에 여성이 타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의외로 지하철 역사나 차량은 쾌적하고 관리가 잘 되어있었으며, 타슈켄트나 바쿠 지하철보다 훨씬 나았다. 지하철 안에서 옆에 앉아있는 이란인이 나한테 말을 걸었는데, 나한테 영어를 못한다고 꼽줬다. 지가 그지같이 발음해놓고선 누구한테 성내는지.
숙소가 위치한 이맘 호메이니 역까지는 한번 갈아타서 갈 수 있었다. 이란에 있는 숙소는 미국의 제재 때문에 부킹닷컴이나 호스텔월드에서 예약을 할 수가 없고, 현지결제를 하거나 www.hostelsiniran.com 에서 예약을 할 수도 있다. 내가 묵은 숙소는 Seven Hostel이라고 하고, 꽤 규모가 큰 호스텔이었다. 지하철역에서 숙소까지는 주로 자동차용품이나 공구류 등을 파는 가게들이 많았고, 한 끼 때울 수 있는 데는 몇 군데 없었다. 결국 저녁도 못 먹고 이란에서의 첫날을 보냈다.
다음날, 일단 숙소에서 가까이 있는 골레스탄 궁전에 먼저 들러보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도 됐지만 그냥 산책 삼아 걸어다녔다. 웬지 간판에 태극문양 비슷한 게 보이는데, 가게 이름이 알보르즈(البرز - 이란 북쪽에 있는 산맥)이어서 딱히 한국이랑 관련된 가게는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골레스탄 궁전에 도착했다. 건축물 앞에 길쭉한 모양의 인공 연못이 있는 건 페르시아식 정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건조하고 여름이 무더운 이란에서 이 구조물은 온도를 낮춰 주변환경을 쾌적하게 해주었다고 한다. 골레스탄 궁전은 기본 입장료가 있고, 거기에 각각의 건물마다 또다른 입장료가 있다. 이란을 제대로 여행하는 첫날이기도 하고 그때만 해도 리알화의 가치가 어느정도인지 감이 잘 안와서, 그냥 처음에는 모든 건물을 다 들어갈 수 있도록 티켓을 구매했다. 현지인과 외국인에게 입장료를 다르게 받는 듯했다.
처음 들어간 곳은 Marble Throne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벽면이 전부 거울로 돼있어서 굉장히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이름과 같이 가운데에는 대리석으로 된 왕좌가 있었다.
사실 지금 이란 하면 연상되는 반미, 반서구 이미지와는 달리, 이란 혁명 이전 왕국 시절만 해도 서양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국가이다. 그래서 서양의 기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그림 작품들도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슬람 하면 연상되는 세밀화와는 제법 다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외에도, 실제로 카자르 왕조 시절에 왕족이 살았던 궁전답게 굉장히 화려한 모습을 이곳저곳에서 자랑하고 있었다. 그중 한 건물은 이름부터가 다이아몬드 홀 (Talar-e Almas)인데, 사진을 안 찍은건지 남아있는 게 하나도 없다.
한참동안 골레스탄 궁전을 둘러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각각의 건물마다 독특한 개성이 있어서 시간과 돈이 있다면 전부 둘러봐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골레스탄 궁전을 둘러본 후에는 전에 미국대사관으로 쓰였던 건물에 가보기로 했다.
"Down with the U.S.A"
이란이 미국과 완전히 적대관계를 취하고 있는 지금은 대사관을 박물관으로 개조해서 쓰고 있다. 건물 외벽, 그리고 대사관 담벼락에 반미를 상징하는 글귀와 그림들이 잔뜩 그려져 있었다. 이란이 반미 노선을 밀고 나가는 바람에 미국에 갈때 비자 없이는 못 가는 신세가 되었지만... 팔라비 왕조가 몰락하고 종교 꼴통 정권이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 수립되는 데에는 여러 사정이 있었다고 한다.
뭐 어쨌든,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안쪽 건물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그날따라 문이 닫혀있었다. 그래서 관두고, 그냥 테헤란 시내를 둘러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사실 테헤란은 그렇게 볼 게 많은 도시는 아니었다. 그 유명한 보석박물관은 내가 갔을 때 전부 휴일이어서 못 갔다.
이제 시내 둘러보기 시작. 테헤란은 대도시이기 때문에 도시를 둘러보는 것만으로 나름 재미있다. 꽤 멋지게 생긴 건축물이 하나 있어서 둘러봤는데, 극장으로 쓰이는 모양. 지하철역도 이 건물의 이름을 따서 만든 모양이다.
길거리에는 토플, 아이엘츠 등 어학 자료를 파는 곳도 눈에 띄었다. 아무리 반미 국가라고 해도 이 사람들도 영어공부를 해서 외국으로 나가리라는 열망이 가득한 듯 했다. 사실 이란 사람들은 꽤 영어를 잘했다. 중국,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아제르바이잔보다 훨씬 영어가 잘 통했다.
그 다음, 골레스탄 궁전 근처로 다시 돌아가서 거기에 있는 바자르에 들렀다. 여기는 전통적인 바자르라기보다는 쇼핑몰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내부는 바자르 느낌이 전혀 나지 않았고 여러 층으로 되어있어 다양한 가게들이 입점해 있는 형태이다. 내가 갔던 때는 이란의 주말 (이란은 이슬람의 영향으로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에 쉬며, 토요일과 일요일은 평일이다)이라 사람이 정말 북적였다. 상인들은 아이스크림, 석류주스, 견과류 등을 팔고 있었다. 나도 주스 하나를 입에 물면서 둘러보다가 아몬드를 충동구매했다. 정가가 쓰여있어서 바가지를 쓰지는 않았으나 생각보다 저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 아몬드는 이란을 여행하는 내내 내 심심한 입을 달래주는 데 유용하게 쓰였다.
다음날 아침에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Saadabad Complex라 불리는 곳이다. 여기는 가는 것이 꽤 귀찮았는데, 지하철을 타고 1호선의 종점인 Tajrish 역에 내린 후, 거기서 20분 정도 걸어야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택시를 타는 것이 더 편했겠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낯선 땅에서 택시를 타는 것이 무서웠기에...
여기도 골레스탄 궁전과 마찬가지로 여러 건물들이 있고, 각각의 입장료가 따로 있었다. 나는 돈을 아끼고 싶어 몇몇 군데만 골라서 입장하기로 했다. 그런데 매표소에서 현금을 안 받는단다. 뭐라구요?? 사실 현금을 아예 안 받는 건 아닌 모양인데, 그때 매표소가 너무 혼잡해서 사람들을 자동발매기로 유도했고, 그 자동발매기는 현금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외국인에게 이란에서 카드결제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 당황하고 있던 참에 어떤 분이 결제를 해주겠다고 선뜻 나서는 것이었다. 아, 역시 이란 사람들의 친절함은 어딜 가지 않는다. 그 분에게 티켓 값을 주고, 티켓을 받아들고 입장할 수 있었다. (여기도 외국인 요금이 따로 있었다. 도둑놈들.) 산자락에 숲이 울창하게 조성되어 있어 산책하기 좋은 곳이었다.
내가 입장했던 곳 중 하나는 Green Palace (Kakh-e Sabz)라는 곳이었다. 얼마나 사람이 많았던지, 입장하는 데 줄을 한참 서서 겨우 들어갔다. 골레스탄 궁전에서는 안 그랬는데, 그날 뭐가 있었나 모르겠다. 여행을 갔다온 지 꽤 오래돼서 사실 안에 뭐가 있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여기는 건물보다도 그냥 숲길을 산책하는 것이 너무나도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짝지어서 다니고 있었고, 개중에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서 머리를 두르고 있던 스카프를 슬쩍 풀어버리는 여자들도 볼 수 있었다.
다시 Tajrish 역 근처로 가면, 거기에는 테헤란에서 유명한 모스크 중 하나인 이맘자데 살레 모스크가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봤던 모스크의 모습이나 색깔 등이 유사했는데, 여기는 좀더 활기찬 모습을 띠고 있었다. 내가 갔던 날은 이슬람에서 예배를 드리는 날인 금요일. 모스크 안쪽을 기웃거리는데 어떤 사람이 나에게 간식거리가 들어있는 접시를 내보였다. 몇개 집어들어 먹었는데, 우리가 흔히 느끼는 이슬람의 모습과는 달리 여기서 예배를 드리는 무슬림들의 모습은 참 보기 좋았다.
배가 고파졌다. 점심을 먹기에는 꽤 늦은 시간이지만, 어쨌든 먹어야 한다. 이란에서, 특히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가게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것은 정말 정말 정말 쉽지 않다. 첫번째 난관은 메뉴에 써있는 음식 이름이 뭘 의미하는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여행 오기 전 군대에서 잠깐 심심풀이로 아랍어와 페르시아어를 맛보기로 공부하기는 했지만, 겨우 문자를 어떻게 읽는지, 그리고 간단한 인삿말 정도만 알고 있는 상황. 그나마 برگر가 버거를, پاستا가 파스타를, 그리고 پیتزا가 피자를 의미한다는 것을 힘겹게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읽을 수 있는 단어 몇개를 조합해서 겨우 페페로니 피자를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두 번째 난관인 페르시아 숫자 읽기도 있는데, 뭐 페르시아어 익히기에 비해서는 약과였다. 여기 숫자에서 동그라미 모양은 0이 아닌 5라는 점만 빼면, 나머지는 공부하다보면 외워지기는 하더라.
늦은 점심을 먹고 나서 테헤란에서 유명한 다리인 타비아트 다리에 갔다. 타비아트 (طبیعت)는 페르시아어 (혹은 아랍어)로 자연이라는 뜻이다. Shahid Haqqani 역에서 내리면 다리로 가는 길이 안내되어 있어서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밖으로 나가는 와중에 꼬맹이들 몇몇이 칭챙총 거려서 짜증나긴 했지만, 사실 여행 다니면서 이런 경험 안하는 게 더 신기할 정도로 흔한 일이라... 역을 내려서 나가면 처음 나를 반겨주는 건 다리가 아니라 웬 미사일과 전차이다. 알고보니 역 바로 앞에 군사 박물관이 있었다. 뭐 거기까지 둘러볼 시간 없으니 얼른 다리로 서둘러 갔다.
좀 걷다 보면 사람들이 몰려있는 다리가 등장한다. 확실히 휴일이라 그런지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나도 그 사이에 슬쩍 숨어 다리 바깥을 바라보고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다리 아래층에 있는 카페에 들러 커피를 한잔 하기도 했다. 다리에서 본 테헤란은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어 테헤란이 얼마나 도시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어느새 해가 지고 바깥이 어두워져, 슬슬 숙소로 들어가서 짐을 들고 테헤란을 떠나기로 했다.
이란 사람들은 남에게 참 관심이 많다. 숙소로 내려가는데 내 또래로 되어보이는 사람들 몇명이 나한테 말을 걸었다.
"چطوری؟ (How are you?)"
한국인으로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말을 거는 게 낯설기만 했는데, 낯선이를 반기는 이란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시라즈까지 가는 밤버스를 타러 이번에는 아르잔틴 터미널 (Terminal-e Arzhantin, Beyhaghi라고도 부름)으로 갔다. 지하철을 타고 Mosalla-ye Emam Khomeini 역으로 가면 된다. 사실 타비아트 다리 앞의 Shahid Haqqani 역과 두 정거장밖에 안 됐지만, 숙소에서 짐을 가져와야 했으므로... 미리 숙소에 부탁해서 예매한 시라즈행 티켓은 버스회사 사무실에서 교환을 받아야 한다. 수많은 회사들이 경쟁하고 있고, 손님을 한 명이라도 더 끌어모으기 위해 목적지를 외치면서 호객을 하는 모습이 눈에 훤하다. "이스파한!" "시라즈!" "케르만샤!" 어쨌는 나는 미리 예매했던 티켓을 교환한 뒤 시간이 되어 버스에 탑승했다. 밤새도록 10시간 정도 달려야 하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또 2-1 형태의 좌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돈으로 만원 전후의 저렴한 가격이었다.
버스가 중간의 휴게소에 내려서 간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해주었다. 이란의 버스들은 간단한 간식거리를 제공해 주는데, 이번에는 간식거리 대신 식사를 제공해 주었다. 이란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날아다니는 쌀과, 반찬(?)으로 토마토와 케밥 (밥 속에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음료로 이란의 국민음료인 둑(dugh)을 주었다. 저 음료는 기본적으로 요거트지만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민트향이 났다. 어울리지 않아보이는 조합이었는데 나름 괜찮았다.
이제 자고 일어나면 시라즈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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