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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 23. - 25, 우즈베키스탄 히바
솔직히 난 히바까지 오고 싶지 않았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부분은 이란과 터키였기 때문에 우즈베키스탄에서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투르크메니스탄 비자를 받을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우즈베키스탄에서 지내야 하는 게 문제. 결국 부하라에서 더 서쪽으로 가서 히바까지 가게 되었고, 이로써 '우즈베키스탄 여행 국민루트'인 타슈켄트-사마르칸트-부하라-히바를 완성하게 되었다. 사실 히바까지 온 김에 더 서쪽으로 가서 누쿠스나 무이낙 등을 둘러보고 싶기도 했지만, 얼른 투르크메니스탄 비자를 받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에 빠르게 국민루트만 둘러보는 것으로 결정했다.
내가 여행했던 당시까지만 해도 히바는 다른 우즈베키스탄의 유명 관광지와는 다르게 철도가 들어오지 않았다. 한창 철도가 공사중인 터라, 히바에는 기차역만 있고 (심지어 직원이 상주하고 있었다) 그 기차역까지 운행하는 철도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히바까지 기차를 타고 가려면 부하라에서 우르겐치까지 이동한 뒤 거기서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숙소 직원에게 히바까지 가는 택시를 알아봐달라고 미리 부탁했었다.
다행히 네 명이 딱 구해져서 비싸지 않게 히바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나와 홍콩인 W, 서로 모르는 일본인 두 명이 합승했다. 부하라에서 히바까지는 꽤 거리가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의 서부는 키질쿰(Qizilkum - 붉은 모래라는 뜻)이라고 불리는 사막이 넓게 펼쳐져 있어, 밖에는 온통 모래뿐이었다. 도로가 울퉁불퉁해서 멀미까지 날 지경이었다.
운전기사는 우리가 뭐에 관심이 있는지 아주 잘 파악했다. 우즈베키스탄 내에 있는 자치공화국인 카라칼파크스탄에 진입할 때 '여기부터 카라칼파크스탄이다'라고 말해주었다. 여행자인 우리 네 명은 모두 그 말을 듣자마자 일제히 밖을 바라보곤 했다. 한번은 밖에 'Nukus'라고 쓰인 이정표를 보고 '여기가 누쿠스인가?' 웅성웅성 거렸는데, 당연히 부하라에서 히바 가는 길에 진짜 누쿠스가 나올리가 없으니. 우리의 니즈를 잘 파악한 기사는 '저 멀리 보이는 게 아무다리야다'라는 말도 해주었다. 중앙아시아 지역의 젖줄인 아무다리야 강을 지나칠 수는 없었는지, 모두 일제히 강에 눈을 돌리곤 했다.
히바에 도착해서 숙소에 짐을 풀었다. 이번에 묵었던 숙소도 2인실인데, 가족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였다. 저렴하게 2인실에 묵을 수 있었던 걸로 기억하고, 숙소가 히바의 성인 이찬칼라 바로 앞에 있어서 편했다. 뭐, 사실 이 동네는 볼게 이 성 말고는 딱히 없다보니 대부분의 호텔이 성 주변, 심지어는 성 내부에 있긴 하지만. 어쨌든, 히바의 풍경은 정말로 사막 한가운데 지은 느낌이었다. 사마르칸트나 부하라보다도 더 사막스러운 느낌으로 꽉 차있었다.
어쨌든 호라즘 지역을 한때 지배했던 히바 칸국의 수도 히바에 왔다. 히바의 랜드마크를 꼽자면 거대한 굴뚝 모양의 칼타 미나렛. 우즈벡어로 칼타(kalta)는 짧다는 뜻인데, 이름에 걸맞게 짧고 뚱뚱한 모양의 미나렛이 인상적이다. 사실 미완성 상태로 남아있는 미나렛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나는 목욕탕의 굴뚝이 생각난다.
(사족: 이 지역 출신의 수학자 알 콰리즈미는 후에 알고리즘algorithm의 어원이 되었다.)
W는 나보다도 더 일찍 우즈베키스탄을 떠나고 싶어했다. 우리의 계획은 히바에서 2박을 한 뒤 타슈켄트로 돌아간 후, 비자를 받고 투르크메니스탄으로 떠나는 것이었다. 나는 타슈켄트에서 여유롭게 하루 묵었다 가려고 했으나, W는 성미가 급했는지 타슈켄트를 찍고 바로 떠나는 쪽을 원했다. 타슈켄트에서 부하라 근처의 국경도시 Alat까지 간 뒤 여기서 투르크메니스탄에 가는 방법이 있었는데, 거기까지 가는 기차표를 서둘러 끊기 위해서 히바 역까지 갔다. 혹시나 여기서 타슈켄트까지 운행하는 기차도 있는지 매표소 직원에게 물어봤었는데,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히바 옆에 있는 기차가 다니는 우르겐치에서 타슈켄트로 가는 침대열차표 한장, 그리고 W는 타슈켄트에서 Alat까지 가는 표를 또 구매했다.
기차역 주변은 건물들을 짓고 있었는데, 아직 개발이 덜 된 상태라 휑했다. 지금은 히바에도 기차가 운행하니까 주변 풍경도 많이 변했을 것 같다.
히바도 관광지다 보니 기념품을 많이 살 수 있었다. 실크 목도리 (사실 목도리로 쓰이진 않을 것 같은데..)가 참 아름다웠다. 살까 말까 많이 고민해봤지만 결국 안 사고 돌아왔다. 여기서도 W는 한참을 기웃거리며 기념품을 구경하는데 열중이었다. 참 우리 둘은 여행 스타일이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히바 성의 특징은 성벽이 매우 두꺼워서 그 위를 걸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성벽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몇 군데 있어, 타고 올라가서 히바를 전반적으로 내려다보기로 했다. 10월 말임에도 불구하고 히바는 꽤 더웠고 햇볕이 따가웠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지만, 나 혼자 다니는 게 아니다보니 참을 수밖에. 하필 모자를 잃어버린 상황이어서 더욱 고통스러웠다. W는 홍콩인 친구와 계속 광동어로 전화통화를 하는데, 뭐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 아니던가.
여기서 싱가포르인 부부 여행자를 만날 수 있었는데 본업이 여행이라고 했다. 한 달 정도 여행을 했던 그 시점에서, 일년 중 대부분을 타지에서 보내는 그들의 모습이 존경스럽기 그지없었다. 그 동안 한국에서 우즈베키스탄까지 (실제 이동거리로) 6천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오면서 장기 여행의 고단함을 몸소 깨닫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히바에서는 이찬칼라 내부의 모든 장소에 입장할 수 있는 통합 입장권을 사면 만사 오케이다. 사실 이찬칼라 말고 다른 갈만한 데가 없기도 하고. 통합입장권을 사고 나면 본전 뽑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장소를 방문하게 된다. 각각의 장소들은 대부분 박물관으로 쓰이고, 미나렛을 올라갈 때는 추가요금을 내야 했던 것 같다. 방금 전 만났던 싱가포르인 중 한 명과 동행해서, 총 세 명이서 미나렛에 올라갔었는데, 그 싱가포르인은 여행에 얼마나 통달했던지 입장료마저도 흥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후, 이곳저곳 박물관과 각종 장소들을 도장깨기 하듯이 돌아다녔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관심가질 만한 것은 별로 없었는데, 그 와중에 또 이슬람 카리모프 얼굴이 등장했다.
얘는 도대체 뭘까. 정식 전시장에 있었다기보다는 외부에 버려지다시피 있었던 녀석인데.
전에는 이슬람 호자 미나렛에서 시내를 내려다봤다면, 이번에는 칼타 미나렛에 올라가 보았다. 왠지 모르겠지만, 칼타 미나렛에서 내려다본 이찬칼라가 더 아름다워 보였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그 풍경에 칼타 미나렛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강조했지만, 우즈베키스탄의 도시들은 낮에 한번, 저녁에 한번, 그리고 밤에 한번 봐야 한다. 각각 다른 매력을 뽐내기 때문이다. 빠르게 입장권에 적힌 모든 관광지를 다 깨고, 석양을 보기 위해서 다시 이찬칼라 성벽 위에 올랐다. 해지기 30분 전쯤 올라왔으나 이미 많은 관광객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개중 일부는 와인까지 꺼내마시며 분위기를 잡고 있더라. 우리도 얼른 자리를 잡고 해가 지기만을 기다렸다. 역시 해질녘의 히바는 참으로 멋졌다.
나도 그렇고 W도 그렇고 우즈벡의 느끼한 음식이 질렸던 터라, 이번에는 마트에서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다 먹기로 했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트가 있어서 장을 볼 수 있었는데, 마트 외부에서는 전기구이 통닭을 팔고 있었다. 부하라의 바자르에서 당근김치를 보고 한눈에 반했던 W는 마트 안쪽에서 당근김치와 양배추김치를 구해왔다. 왠지 모르게 케이크도 하나 사오고. 당근김치와 양배추김치는 정말 고향의 맛이었다.
(특히 당근김치는 한국의 전통음식이라기보다는 고려인들이 소련 곳곳으로 이주한 뒤 그곳에서 나는 재료를 써서 김치를 담근 것에서 유래된 음식이다. 러시아어로 한국 당근морковь по-корейски이라고 불리며, 굉장히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다.)
다음 날, 숙소에서 게으름을 피우다가 타슈켄트로 향했다. 이찬칼라 북문에서는 우르겐치까지 운행하는 트램(트롤리버스였나)가 있다. 굉장히 저렴한 가격으로 우르겐치까지 갈 수 있었지만, 버스 종점이 기차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히바에도 기차가 다니는 지금은 다 옛말이지만... 우르겐치 기차역 근처에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동양인 두 명이 있었다. 놀랍게도 한국인이었다. 그 날, 여행을 떠난지 한 달만에 한국인과 대화할 수 있었다. 그 두 명은 부하라에 가는 모양이었는데, 기차역에서 다시 한번 인사를 한 뒤로는 더 이상 보지 못했다.
기차 안에서 토마토, 오이와 소금만으로 이루어진 놀라운 샐러드를 먹고, W와 함께 하염없이 바깥을 바라보며 열다섯 시간이 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기차의 열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사막바람을 맞을 뿐이었다.
자고 일어나니 타슈켄트 남부역에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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