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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 16 - 19,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1)

 

안디잔에서 하루 푹 쉬고, 다음날 오후가 돼서 타슈켄트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기차역에 왔다. 한국이나 중국, 일본의 기차역처럼 내부에 카페나 음식점들이 있을 것이라 기대했으나, 여기는 우즈베키스탄이었다. 기차역 대합실 내에는 의자만 달랑 놓여있었다. 열차 출발 시간 한시간도 더 전에 미리 짐을 다 싸들고 역에 도착한 나는 망연자실해져, 하염없이 멍하니 있기만 했다. 하필 심카드도 개통하기 전이라 더더욱. 그냥 배낭 들쳐매고 밖이나 돌아다닐까 생각도 했었는데, 비까지 와서 그냥 포기했다.

 

안디잔 기차역 대합실

"Oq yo'l! (Have a good trip!)"

 

우즈벡어와 영어로 잘 가라는 글귀가 적힌 출입문을 나가서 기차를 타러 갔다. 가장 등급이 낮은 표를 산지라 별 기대를 안했던 열차는 생각보다 깔끔했다. 게다가 좌석도 특실마냥 2-1 배치로 돼있어서 다른 사람과 부대끼지 않고 타슈켄트까지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천장의 TV에서 이상한 우즈벡 방송만 나오는 걸 빼면... 안디잔에서 타슈켄트까지는 4시간 이상 걸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안디잔에선 비가 오던 게 어느순간 눈으로 바뀌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빠르게 가던 기차가 어느 구간을 지나서부터 급격히 느려지더니, 밖이 완전히 어두워질 때가 돼서야 타슈켄트에 도착했다.

 

열차 내부
중간에 지나간 코칸트 역
선로 위에 눈이 쌓여있다.

타슈켄트에 도착했는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내가 탄 기차는 지하철이 다니는 타슈켄트 역이 아닌 타슈켄트 남부역 (Toshkent Janubiy)까지 운행하는 열차였던 것이다. 눈을 맞으면서 역을 빠져나오니 내가 예상했던 지하철은 온데간데없고, 여행객들을 등쳐먹으려는 택시 호객꾼들만 즐비하더라. 돈을 아끼기 위해서는 뭐든지 하던 의지의 나였지만, 휴대폰도 안 터지고 눈까지 내리던 터라 우즈벡 물가치고는 꽤 많은 돈을 주고 숙소까지 왔다.

 

그런데, 내가 예약했던 Trip.LE 호스텔이 빈자리가 없다고 나를 내쫓던 게 아닌가. 분명 부킹닷컴으로 예약을 했는데 자리가 없다니, 어이가 없었을 따름이다. 호스텔 측에서는 택시비를 대주고 나를 Topchan Hostel이라는 곳으로 보내줬다. 사실 Trip.LE 호스텔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과 가까워서였다. 중앙아시아를, 특히 투르크메니스탄을 여행하고자 하는 여행자들에게 타슈켄트에 있는 투르크멘 대사관은 악명이 높아서, 비자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새벽부터 줄을 서있어야 된다는 둥 거기서 서너 시간을 추위에 떨면서 기다려야 된다는 둥 별별 괴소문이 다 도는 곳이었다. 하지만 Topchan은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까지 가기 위해서는 먼저 버스를 타고 (아니면 2-30분 걸어서) 타슈켄트 기차역까지 간 다음에 거기서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뭐 어쨌든 이런 갑작스러움도 배낭여행의 묘미 아니겠는가. (결국 후에 Trip.LE 호스텔에 묵을 기회가 있었다.)

 

전날 눈이 오던 타슈켄트, 다음날은 햇볕이 쨍쨍했다. 우선 가장 먼저 한 것은 당연히 심카드 개통. Ucell이라는 통신사에서 개통했고, 의사소통이 좀 어렵긴 했지만 그래도 여차여차 해서 심카드를 얻었다. 그 후, 어딜 갈지 고민하다가 첫번째로 간 곳은 한 미술관이었다. 타슈켄트 기차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Kosmonavtlar 역으로 간 다음에 거기서 좀 걸으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박물관 입구에 매표소와 비슷하게 생긴 부스에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나는 어쩌다 보니 딱히 표를 안 사고 입장하게 되었다. 원래 무료입장이 가능했던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타슈켄트 시내 어딘가

박물관 건물 외벽에는 나름 우즈베키스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통 문양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이 기하학적인 무늬와 푸르스름한 타일들의 조화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내부에는 여러 공예품들을 전시해 놓았다. 

 

미술관 건물 외부
전시품들

미술관의 규모가 아주 크지는 않지만 전시가 알차게 되어있었다. 관람을 끝내고 나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Chorsu 역으로 향했다. 역을 나서면 바로 거대한 규모의 초르수 바자르가 있지만, 바자르는 좀 있다 보기로 하고 우선 좀 걸어서 하즈라티 이맘 광장으로 향했다. 이 광장에는 다양한 모스크가 있었고, 특히 초기 이슬람 시기의 쿠란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이 있다. 이슬람에 관심이 있거나, 없더라도 그냥 아름다운 건축물을 구경하고자 하면 방문하기 좋은 곳이다.

 

하즈라티 이맘 광장의 한 모스크
하루 다섯번 기도시간을 표시한 시계들.

그 주변을 정처없이 돌아다니다 다시 철수 바자르로 향했다. 배가 고팠던 나는 일단 음식을 파는 곳을 찾아갔다. 샤슬릭 꼬치 두 개와 순대같이 생긴 음식을 달라고 했다.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대부분의 음식점은 기본으로 빵덩어리(러시아어로 리뾰쉬카лепёшка 혹은 우즈벡어로 넌non)이 기본적으로 제공되어 같이 먹을 수 있었다. 샤슬릭은 딱 예상되는 맛이었고, 순대(이 음식의 이름은 아직도 모르겠다)는 한국의 피순대에 향신료를 잔뜩 집어넣은 듯한 괴상한 맛이 났다.

 

오른쪽 그릇에 들어있는 음식은 영락없는 순대이다.

바자르를 좀 구경하다가 다시 지하철을 타고 Mustakillik Meydoni 역으로 가서 역사박물관에 들어갔다. 외부 건물은 제법 아름답게 되어 있었고 내부에도 우즈베키스탄의 역사를 볼 수 있도록 잘 꾸며 놓았다. 물론 현대사 부분에서는 우즈베키스탄의 초대 대통령인 이슬람 카리모프 찬양이 빠지지 않았다. 재미있었던 점 중 하나는 박물관에 병마용이 하나 전시돼 있었다는 점이다. 시안에서 이미 병마용갱을 보고 온 터였지만, 여기서 한번 더 보았더니 감회가 새로웠다.

 

타슈켄트 지하철 내부. 최근까지도 내부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으나 2018년 즈음에 허가되기 시작했다.
우즈베키스탄 역사 박물관 외부
박물관에 있던 병마용

박물관을 나와 좀만 나가면 타슈켄트의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거리인 브로드웨이 거리가 나온다. 솔직히 말해 거리 이름을 왜 브로드웨이라고 지었는지는 전혀 모르겠고, 낮이라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이 정말 별로 없었다. 실제로 여기는 낮보다 밤이 더 화려했던 것 같다. 뭐 그래도 실제 뉴욕의 브로드웨이 발끝에도 못미치지만. 제대로 된 브로드웨이 구경은 후에 타슈켄트에 다시 돌아와서 했다.

 

을씨년스러운 낮의 브로드웨이 거리.
아미르 티무르 동상

어느덧 해가 지고, 나는 타슈켄트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오페라 관람을 하기 위해 나보이 오페라로 향했다. 매표소에 갔더니 그날은 오페라 대신 발레를 했다. 오페라가 아니라 발레면 어떠하리. 우즈베키스탄도 구소련 국가답게 이런 문화가 나름 발달해 있었고, 또 티켓이 굉장히 저렴하기까지 했다. 타슈켄트에 방문한다면 꼭 한번쯤은 가봐야 하리라. 내가 관람한 발레의 제목은 '지젤'이었다. 대충 귀족 남자를 사랑하던 여자가 그 사랑을 못이루고 죽어서 유령이 되고 사람들을 저주하는 내용의 발레였다.

 

나보이 극장 외관
발레의 커튼콜

그후 숙소에 돌아가서 다음날을 맞이하기 위해 푹 쉬었다. 로비에 터번 쓴 인도 아재들과 떠들면서 늦은 밤을 보내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은 투르크메니스탄 비자를 신청하는 중요한 날이었기에 좀 긴장이 되었다. 투르크메니스탄을 가느냐 마느냐는 육로로만 실크로드를 여행하겠다는 내 계획에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Topchan Hostel 내부
Topchan Hostel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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