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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 12 - 15, 키르기스스탄 오쉬

2018. 10. 15 - 16, 우즈베키스탄 안디잔

 

중국에서 열심히 달려오느라 힘들었기에 볼거 없는 키르기스스탄 오쉬에서 3박이나 해버렸다. 밤에 숙소에 들어갔더니 4인실 중에 이름 모를 여행자 한 명만이 있었다. 너무나 피곤했던 나는 인사할 겨를도 없이 쓰러져버렸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그 여행자는 온데간데 없었고, 체크아웃 때까지 방을 혼자 썼다. 게스트하우스는 따로 건물이 있는 게 아니고 아파트의 한 부분을 개조해서 쓰는 듯했다.

 

3박이긴 했지만 사실 마지막날 아침에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났기 때문에 실제로 키르기스스탄에서 머물면서 여행한 기간은 이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딜 특별히 가지는 않고 (그럴 생각도 없었고)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오쉬에는 별다른 특별한 관광지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많은 여행자들은 단지 여기를 잠깐 거쳐서 파미르 고원으로 가거나 우즈베키스탄으로 갈 뿐이다.

 

키르기스스탄이 위구르 자치구와 크게 달랐던 점 중 하나는 역시 소련의 분위기가 짙게 깔려있다는 점이다. 거대한 동상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나 소련스러운 아파트, 그리고 소련스러운 작은 놀이공원 등등. 일단 카페에 들어가서 라그만 한그릇을 주문해서 먹고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구소련 국가에서 카페는 비싸지 않은 음식을 파는 식당이다. 라그만은 중국의 라몐에서부터 전래된 음식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향신료가 많이 들어가지는 않아서 부담없이 먹을 수 있었다. 

 

길거리에 있던 거대한 동상
오쉬의 길거리
놀이공원의 산책로
대관람차

오쉬에서 딱 하나 가볼만한 관광지를 고르자면 술레이만투 산이 있다. 산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규모는 작지만, 산 내부에 박물관이 있고 또 올라가면 오쉬 전체를 전망할 수 있어서 올라가볼만 하다. 우선 산 아래에 박물관이 하나 있어서 잠시 구경했다. 영어라고는 전혀 볼 수 없는 키르기스스탄의 친절함에 감동해서 내국인 요금보다 몇 배나 비싼 외국인 요금을 내고 구경했다.

 

산은 바위산이지만 계단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올라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등산로 중간중간에 구멍이나 굴을 뚫어놓은 바위들이 있었는데, 사실 술레이만투 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종교적으로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튀르크 고대 신앙과 이슬람 신앙이 합쳐져서 이런 문화를 만들어냈다나 뭐라나. 이곳은 지금도 예배가 이루어지고 있다. 뭐, 사실 외국인으로서 예배는 큰 관심이 없었고, 그냥 정상에 오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산 아래에 있는 박물관의 전시품
산 입구로 가는 길에 있는 모스크
산에 올라가는 길

산 중턱의 굴에 또 박물관을 만들어 놓았다. 원래 올라가는 길에 입장하려고 했었는데, 하필 그때 박물관이 점심시간이라고 잠시 쉰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구경하기로 하고 정상으로 향했다. 정상에서 바라본 오쉬 시내는 아주 멋지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탁 트인 전경이 제법 나쁘지 않았다.

 

산 중턱의 박물관 입구
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오쉬 시내

내려가는 길에는 계단으로 된 쉬운 길을 벗어나서 아무것도 없는 능선을 따라서 걸어봤다. 저 멀리 뭔가 있을 것 같은 동굴이 하나 보여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물론 나는 이런 유혹을 뿌리치지 않고 동굴까지 갔다. 가는 길은 경사져있고 바닥에 모래가 있어서 굉장히 미끄러웠다. 주변의 바위나 나무를 잡고 겨우겨우 동굴 안에 들어가보았다. 암각화가 그려져 있다고 하는데,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이래서 여행기는 여행 도중에 바로바로 써줘야 한다. 내려가는 길에 박물관에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흥미로운 전시품들로 되어 있었다.

 

박물관 내부

그 후 천천히 시내를 둘러보고, 다음날도 그냥 바자르에서 물건 쇼핑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중앙아시아와 이란을 여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바자르. 현지인들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관찰할 수 있고, 내가 그 삶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사실 오쉬 바자르에서는 정말 생활용품이나 의류 위주로 팔고, 또 오쉬가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 탓에 기념품 따위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손이 터서 건조했던 나는 그냥 핸드크림 하나만 사갔다.

 

오쉬 바자르

여튼, 실크로드를 빨리 완주해야 했던 나는 키르기스스탄에서 더 오래 머물지 않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나기로 했다.

 

 

다음날, 우선 숙소에서 택시를 타고 도스툭 국경으로 향했다. '도스툭'은 키르기스어로 '우정'이라는 뜻인데,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우애를 다짐하기 위해 만들었나 보다. 그런데 이 망할 국경은 키르기스스탄을 탈출(?)하려는 사람들로 한가득이었다. 어떻게 해야되나 당황한 나를 본 어떤 남자가 돈을 주면 줄을 뚫어주겠다고 제안했다. 원래 이렇게 뇌물을 주기는 싫었으나, 키르기스스탄을 벗어나는 출구에 좀비마냥 달라붙어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서 눈감고 뇌물을 주었다. 잠깐 환전할 시간도 갖고, 그 남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뭐라뭐라 하면서 내가 지나갈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게 키르기스스탄을 탈출하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우즈베키스탄 입국심사를 마치고 택시를 타고 안디잔으로 들어갔다. 바로 타슈켄트로 들어가고 싶었으나 국경에서 타슈켄트까지는 거리가 꽤 멀어서 혼자 택시를 잡기에는 돈의 압박이 컸다. 택시비로 몇 불을 주고 안디잔 기차역에 도착했다. 여기서도 잠시 쉬어갈 겸 Villa Elegant Hotel이라는 곳에 묵었다. 시설이 나쁘지 않으면서도 1박에 30불 정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 안디잔은 관광지가 전혀 아니라 호텔만 있기도 하고.

 

안디잔에서는 몇 가지 인상깊었던 경험을 했다. 하나는 호텔 직원이 우즈벡인인데 한국어가 능숙했다는 점이었다. 날 보자마자 한국인인 걸 알아본 건 우즈베키스탄에서 처음 경험했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중국인 취급만 잔뜩 받았는데. 또 하나 인상깊었던 점은, 술이 땡겨서 리쿼샵에 들러서 보드카 한 병 (500ml)과 큰 사이즈 맥주 한 병 (1.5리터였나)을 들었는데 가격이 한국돈으로 2-3천원 남짓이었다는 점이다. 여튼 술과 함께 바자르에서 빵과 과일을 좀 사가지고 들어가서 마시면서 하루를 빈둥빈둥 날렸다. 저녁으로는 오랜만에 돈을 써서 스테이크를 사먹기도 했고. 재미없는 도시였지만,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내 첫인상은 너무나도 멋졌다.

 

여기서 깨달았다. 찍었던 사진을 옮기는 과정에서 일부가 사라졌음을. 젠장, 왠지 사진이 중간중간에 빠진 느낌이더라. 데이터를 소중히 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아니면 사진을 최대한 많이 찍든가.

 

안디잔에 있었던 동상
안디잔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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