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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2, 중국에서 키르기스스탄으로
(국경지대라 보안 문제 때문에 사진이 많지 않습니다)
해가 뜨기도 전에 카슈가르 기차역 옆에 있는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내가 알아본 바로는,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쉬켁으로 가는 길은 보통 막혀있고 일반인들이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르케슈탐 고개를 넘어 오쉬로 가는 것. 이마저도 바로 가는 게 아니라 카슈가르에서 버스를 타고 우차(乌恰)로 가서 1차 검문을 통과하고, 거기서 쉐어택시를 타고 실제 국경으로 간 다음 키르기스스탄 입국 후 다시 쉐어택시를 타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여행하던 때는 오쉬까지 가는 직통버스를 운행하지 않는다나 뭐라나.
일단 매표소에서 우차까지 가는 표를 끊고 승강장으로 갔다. (약 30위안) 버스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나를 반겨줬던 건 승용차 한 대이다. 위구르인 운전사와 나, 그리고 중앙아시아 쪽 사람으로 보이는 두 명이 더 타서 총 네 명이 우차로 간 것이다. 한 시간 쯤 갔을까, 현지인 두 명은 먼저 어딘가에서 내리고 버스(?)기사는 날 좀더 태워줘서 검문소까지 데려다주었다.
검문소 직원은 내 여권과 휴대폰을 뺏어가더니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내 사진첩을 열게 했다. 사생활을 보여주기는 끔찍이도 싫었으나 위구르 자치구의 삼엄한 경비에 지칠대로 지친 나는 자포자기하다시피 사진을 보여주었다. 내 사진첩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 직원은 내 여권을 들고 어딜 가더니 한참 뒤에야 다시 나타나서 여권을 돌려주고 나가게 했다. 버스기사는 날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고, 조금 더 가서 2차 검문소가 나왔다. 여기서 버스기사는 날 내려주고 사라졌다. 야외에서 한번 검사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2차 검문소에서의 검문은 처음의 그 답답함에 비하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검사를 통과하고 실제 중국 측 출국심사를 하는 곳까지는 좀 더 가야 했는데, 그냥 걸어가려고 하다가 어떤 트럭 운전사가 태워준 덕에 손쉽게 갈 수 있었다. 여기서 또 기다려서 결국 출국심사 완료. 그런데 한 가지 문제점이 있는데, 여기서부터는 정해진 쉐어택시를 타야만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쉐어택시의 가격은 차 한 대당 실제 국경까지 400위안. 배낭여행자에게 400위안은 정말 크고 귀중한 돈이기 때문에, 이 돈을 다 내고 탈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정말 감사하게도 같은 방향으로 가는 중국인 사업가 두 명을 만날 수 있었다. 결국 내야 할 돈은 400위안에서 140위안으로 줄어들었고, 세명이서 함께 키르기스스탄으로 향했다. 사실 이 출국심사 하는 장소에서 실제 국경까지는 차로 두 시간 넘게 걸리는 아주 긴 거리였고, 산맥 구경은 아주 실컷 할 수 있었다. 가는 족족 산과 계곡의 향연을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하였고, 종종 길을 막는 양떼와 염소떼를 보는 것도 나로서는 재미있을 따름이었다. 누런 빛의 민둥산은 국경에 다가갈수록 만년설로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오후 한시인지 두시인지에 키르기스스탄 국경에 도착을 했다. 이 국경의 악명높은 점은 오후 1시부터 2시까지 위구르 시간으로 점심시간 동안 닫는다는 것이다. 우리를 데려다준 택시 기사는 우리를 한 식당으로 안내했고, 거기서는 간단한 쁠롭과 빵, 그리고 차를 내놓았다. 다 먹고 밖을 둘러보는데 할 게 전혀 없어서 헤매다가, 밥을 먹었던 식당 주인이 안에 잠시 쉴 곳을 제공해 주어 누워있을 수 있었다. 멍하니 국경이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
국경이 열린 뒤 다시 차를 타고 또다른 출국심사를 하는 곳까지 갔다. 지겨운 검문! 위구르 자치구의 삼엄함에 익숙해졌어도 이 국경은 도를 지나쳤다. 여기서 출국심사를 끝내면 또 다른 택시로 갈아타서 키르기스스탄 입국장까지 가야 한다. 여기서 또 20위안인가를 뜯겼던 것 같다. 한 10분 정도 갔더니 키르기스스탄 측 사무소가 나왔다.
중국 측의 고압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키르기스스탄의 직원들은 친근하고 장난스러웠다.
"선물 있어?" "선물 줘!!" "돈 있어?" "추우니까 따뜻하게 입어"
이런 식의 대화가 (러시아어로) 주고받아지고 국경 통과는 어렵지 않게 가능했다. 여기서 또다른 난관에 봉착. 이번에는 오쉬까지 갈 쉐어택시를 구해야 했다. 다행히 중국인 사업가 두 명은 이 상황에 익숙했는지, 8000솜을 부르는 택시기사와 지겹도록 말싸움을 하더니 결국 6000솜, 인당 2000솜까지 깎아서 난 오쉬에 내려주고 나머지 두명은 카라수라는 동네까지 가기로 합의했다. 내가 혼자 갔다면 꼼짝없이 8000솜을 다 냈을 것만 같은 생각에 저 중국인 두 명을 만난 건 그저 행운이라고 곱씹었다. (1솜 = 0.1위안 = 17원 정도)
나와 중국인 사업가 두 명은 서로 대화하려고 애를 썼다. 영어를 못하는지 나에게 러시아어로 먼저 말을 건냈고, 러시아어를 찔끔 배운 나도 그거에 겨우겨우 답해가면서 한국인과 중국인이 러시아어로 의사소통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연출했다. 뭐 어쨌든 말이 조금이라도 통해서 다행이다.
중간에 사리타쉬라는 동네가 나오는데, 대충 파미르 고원이 시작하는 곳이다. 날이 좀더 따뜻하고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면 사리타쉬에서 며칠 묵는 것이었지만, 너무 바빠서 포기하고 바로 오쉬로 향했다. 3-4시간 정도 더 달려서 오쉬 시내에 도착. 중국인의 도움으로 은행에 들러 환전도 할 수 있었다. 정말 문제는, 내가 묵을 숙소가 어딘지 도저히 모르겠는 것. '오쉬 게스트하우스'라는 곳이었는데 계속 '게스트하우스!' 이래도 못 알아듣는 것이었다. 국경을 넘었으므로 당연히 중국의 심카드는 먹통이 되고, 쉐어택시 기사는 결국 나를 엉뚱한 호텔에 떨궈주었다. 그 숙소의 러시아어 명칭이 '가스쩨보이 돔 오쉬' - 그냥 오쉬 게스트하우스라는 뜻 - 라는 것만 알았어도 조금 더 편했을 것 같기도 하고...
기사가 떨궈준 그 호텔서 그냥 잘까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배낭여행자의 기지를 발휘해서 심카드 파는 데를 찾아보았다. 배낭을 메고 한참을 해매다가 사람이 북적이는 곳을 발견했다. 늦은 오후였으나, 다행히도 시장 근처에 심카드를 파는 사람이 아직도 있었다. 고등학생 정도 나이로 보이는 남자아이었는데, 마찬가지로 키르기스 특유의 붙임성으로 '몇살임?' '여친있음?' 이런 말들을 건넸다. 키르기스스탄의 유심은 굉장히 저렴했고 개통 절차도 매우 간단했다. 결국 인터넷을 개통한 나는 원래 목적지인 오쉬 게스트하우스까지 걸어가서 잠을 청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열두 시간 정도 걸리는 힘든 여행이었다.
여튼, 국경을 넘는 것은 한국인으로서 경험해보면 좋긴 하다. 사실상 섬나라에 사는 우리는 해외로 나가려면 비행기나 배를 타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에 무의식적으로 사로잡혀 있으나, 내륙의 수많은 나라에서는 도로, 심지어 철도를 이용해서 다른 나라로 향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독일로 가는 것처럼 넘기 쉬운 국경도 있고, 이날 느꼈던 중국에서 키르기스스탄에 가는 것만큼 험하고 까다로운 국경이 있다. 어찌됐든 우리의 시야를 넓히는데 참 도움이 된다고 느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파키스탄으로 가는 쿤제랍 고개도 넘어보고 싶다.
<중국 카슈가르에서 키르기스스탄 오쉬로 가는 방법>
카슈가르 버스터미널에서 우차까지 가는 버스 시간표를 알아내고, 그에 맞춰서 아침 일찍 카슈가르를 떠나서 우차 검문소로 간다 (18년 기준 35위안 정도). 1차 검문과 2차 검문, 출국심사까지 마치면 총 4인까지 탑승 가능한 쉐어택시 (18년 기준 400위안)를 타고 실제 국경까지 간다. 도착했을 때에는 아마 국경은 점심시간이라 닫혀있을 것이고, 식당에 들러 점심식사를 하고 국경이 열릴때까지 기다린다. 국경이 열릴 시간이 되면 다시 택시를 타고 더 가서 실제 국경을 통과한 후, 택시를 타거나 (200솜 정도) 걸어서 키르기스스탄 측 입국심사장으로 간다. 입국심사를 마치면 택시기사와 잘 흥정해서 오쉬나 사리타쉬 등으로 간다. (오쉬 기준 1대 6000솜으로 갔었는데, 러시아어가 안되면 흥정하기 어렵다) 이 방법으로 가면 아침 일찍 카슈가르를 떠나서 해가 지고 나서 오쉬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www.caravanistan.com 에 정보가 잘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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