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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많이 인용되는 얘기 중에 이런 게 있다. 왜 산에 오르냐는 물음에 '산이 거기에 있기에 산에 오른다'라고 대답하는 내용이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여행을 왜 하냐고 물으면 거기에 낯선 세계가 펼쳐져 있기 때문에 여행하는 것이다. 여태까지 돈을 모아서 일본에, 그리고 교환학생을 갔던 기간 동안에는 동남아 곳곳을 여행했었는데, 이번에는 유럽을 가게 되었다. 일본에 한국과 비슷하지만 다른 일본만의 매력이 있고, 동남아에는 값싸고 맛있는 음식과 일년 내내 덥고 습한 지역의 독특한 문화가 있듯이, 유럽도 마찬가지로 온화한 기후와 지리적 특성이 주는 특별한 문화가 있기 마련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가장 꿈꾸는 여행지 중 하나인 유럽을 나도 갈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여행의 특징으로 하나를 꼽자면 좀 가난하게 가야 한다는 점이다. 처음에 돈이 어느 정도 있을 지 계산하여 여행 기간을 정했는데 (이조차도 좀 빡빡하게 잡은 편이다), 너무 돈을 많이 써 버린 탓에 좀 돈이 많이 모자라게 된 것이다. 고민하다 내가 한 선택은 경제학적으로 접근하여 최선의 선택만을 하는 것이다. 유럽 여행에서 돈을 많이 쓰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입장료이다. 그렇지만 비싼 돈 주고 입장했는데 생각보다 별로인 경우도 많을 것이다. 즉, 나는 이 입장료를 내어 얼마만큼의 편익을 얻을 것인지 철저히 계산하여, 손해를 볼 것 같은 곳은 아쉽지만 포기하기로 하고 여행을 하기로 하였다. (이 선택은 옳았다. 결과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모자랐다.)
마침 1월 초에 카타르항공에서 프로모션을 하여 매우 싼 가격에 표를 팔길래, 덥석 하고 물어서 표를 구할 수 있었다. 원래 처음에는 런던으로 입국하여 이스탄불이나 모스크바에서 출국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나, '이번에는 서유럽을 중심으로 다니고 나중에 기회 되면 동유럽 쪽도 다녀보자' 하는 생각에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출국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영국을 다니던 도중 스코틀랜드에도 꼭 가보고 싶었는데 마침 카타르항공에서 에딘버러까지도 운항을 하고 있어 에딘버러로 입국하게 되었다.
카타르항공은 인천공항에서 새벽 1시가 넘어 출발하기 때문에 공항버스 막차를 타고 공항에 밤 10시가 좀 넘어 도착을 하였다. 아침이나 낮에만 공항을 이용했었는데, 이시간에 공항에 왔더니 공항이 텅텅 비었다. 적막함을 넘어 뭔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섬뜩함에 얼른 체크인 카운터로 갔다. 밤에 조명을 어둡게 해서 노숙하기는 좋을 것 같다. 예전에 간사이 공항에서 노숙할 때 너무 조명이 환해 힘들었었는데, 이래서 인천공항이 노숙하기 가장 좋은 공항 중 하나로 뽑힌 걸까? 체크인을 마치고 얼른 들어가서 면세구역 안으로 들어간 뒤 스타벅스 한 잔 시키고 두 시간 가량 기다렸다.
거의 열 시간 가까이 되는 긴 비행인데 (모스크바 가는 것보다 더 오래 걸렸다) 아무래도 밤비행기다 보니 두 번 나오는 기내식을 한 번은 새벽 2~3시 쯤에 주고 나머지 한 번은 도착 두 시간 정도 전에 주었다. 옆에 앉은 사람은 기내식 나올 때 뭔가 이것저것 요구를 많이 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카타르항공 승무원이었던 것 같다.
두 번째 기내식을 먹을 때 어디쯤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모니터를 켰는데 파키스탄 상공이었다. 파키스탄에서 밥을 먹게 될 줄이야. 사실 파키스탄은 꼭 여행해보고 싶은 나라 중 하나라서 기억에 남았다. 이 비행에서 이용한 루트가 한국에서 중국으로 해서 위구르 지나 파키스탄도 지나고 두바이 거쳐 도하로 도착하는 루트였는데, 중국을 지나 파키스탄으로 가는 여행을 꼭 해보고 싶다.
도하 공항에서 가장 유명한 거대한 곰인형. 분명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인이 대부분이었었는데, 공항에서 환승을 하기 위해 대기하니 다들 온데간데 없고 서양인과 아랍인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대부분은 런던이나 바르셀로나 등 대도시로 환승하지, 누가 에딘버러로 환승할까. (있긴 했음) 대부분이 영국 사람인 에딘버러 가는 비행기에서는 잔뜩 위축되고 긴장된 상태로 있었다.
에딘버러 공항에 도착하고, 입국 심사를 받았다. 영국 입국심사가 참 깐깐하다는 말을 익히 듣고 있어서 잔뜩 긴장하고 입국 심사대에 들어갔는데, 별로 깐깐하지 않았다. 사실 입국심사 때 질문을 받은 적이 거의 없긴 했다.
"영국 왜 왔어?"
"여행하러."
"누구랑 왔어?"
"혼자 왔어."
"며칠 있다 가?"
"7일 있다가 파리로 가."
"ㅇㅇ 여행 잘 해!"
일년 내내 30도가 넘는 동남아에 있다가 20도 중후반을 왔다갔다하던 한국 날씨에 적응을 겨우 하기 시작했는데, 에딘버러는 생각과는 달리 무시무시하게 추웠다. 구름도 잔뜩 꼈고 가느다란 빗방울도 떨어지고 있었다. 옷을 걸쳐입으려고 화장실에 갔는데... 왠지 모르게 바지 지퍼가 고장나 있었다. 처음 여행할 때는 춥고 끝마칠 때쯤은 무척 더울 게 분명하여 긴옷과 짧은 옷을 조금씩 들고 온 터인데.
에딘버러 공항에서 빠져나왔다. 시내로 가는 100번 버스를 타러 갔다. 인터넷에서 분명 4파운드라고 확인하고 갔는데 어느새 4.5파운드로 올라 있었다. 엄청난 물가 상승률이다! 버스를 타고 에딘버러 기차역 앞에서 내린 뒤 호스텔까지 걸어갔다. 내가 묵은 호스텔은 에딘버러 성 바로 앞에 있는 위치는 참 좋은 호스텔이었다.
호스텔에 짐을 넣어두고 머리도 못 감고 꾀죄죄한 모습 그대로 처음 찾아간 곳은 Oink라는 버거집이다. 가격표를 보다시피 저렴한 가격에 점심을 해결할 수 있다. 나는 저 세 사이즈 중 중간 사이즈인 Oink로 먹었다. (사실 저 Oink 사이즈는 한국 돈으로 거의 7천원이나 하여 전혀 저렴한 가격을 자랑하지 않지만, 여기는 영국이지 않은가. 영국 물가 치고는 저렴하게 한 끼 때울 수 있는 좋은 곳이다.) 토핑으로 하기스(haggis; 스코틀랜드 전통음식인데 양 따위의 내장으로 만듦)와 칠리 치즈 소스를 넣어서 먹었다. 맛있었다:) 사실 에딘버러의 펍에는 Haggis, neeps and tatties라고 한 하기스로 만든 요리를 파는데, 사정상 결국 못 먹게 되었다.
점심을 먹고 방을 배정받아 씻고 난 후에는 시내 곳곳을 돌아봤다. 에딘버러는 정말 중세 느낌이 물씬 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Castle Rock이라는 바위 위에 세워진 에딘버러 성도 고고하면서 웅장하였다. 딱히 어디 들어가보지는 않았지만, 그냥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게다가 여행 첫날이라 새로운 곳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해 신나게 돌아다녔던 것 같다. 첫날 저녁은 간단하게 빵과 주스로 때우고 방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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