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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을 보내고 혼자 남겨진 나는 단수이 (淡水)에 가보기로 했다. 한국에서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배경이 된 곳으로도 유명한 지역. 여기는 서양식 건축물들이 많이 남겨져 있는데, 강 하구에 위치한 덕에 항구가 위치한 덕에 대만에서 서양과의 교류가 처음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다. 일본이나 동남아를 여행하게 되면 서양 문물이 처음 들어와 붉은 벽돌로 된 이국적인 건물들이 즐비한 지역을 방문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대만에서도 동서양의 조우가 시작되는 곳은 어떨지 궁금했다.
단수이는 타이베이를 벗어난 위성도시인 신베이에 위치해 있고, 지하철을 타고 꽤 멀리 이동해야 하는 곳에 있었다. 타이베이 지하철역에서 레드라인을 타고 종점까지 이동해야 한다. 40분 정도 이동했고, 모든 노선이 단수이 종점까지 운행하는 게 아니라 안내판을 확인하고 탑승해야 한다. 다행히(?) 단수이는 이 노선의 종점이기 때문에, 행선지에 淡水라고 써있는 열차를 타면 만사 해결.
전철을 타고 반쯤 졸면서 단수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역에서 내린 단수이의 모습은 평범한 동네 상권이었다. 인상적인 건물은 딱히 눈에 띄지 않았고 평범한 모습의 상가만이 보였다. 사실 이 전철역은 단수이 여행의 시작점일 뿐이고, 여기서 더욱 걸어들어가야 단수이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얼른 걸어보기로 했다. 여기서 홍마오청이나 진리대학, 혹은 단수이의 다른 동네를 가기 위해서는 R26번으로 대표되는 버스를 타도 되지만, 강가를 따라 도시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에 왕복 중 한번은 도보로 여행하는 것을 추천.
역에서 단수이 강을 따라 스트릿푸드를 파는 맛집들이 즐비해 있는 단수이 라오제 (淡水老街)가 위치해 있다. 여기도 나름 분위기 있는 길거리였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단수이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강 하구가 보이는 풍경과 서양식 건물이 어우러진 모습을 보러 앞으로 나아갔다.
라오제 안쪽을 걷다가, 강가의 탁 트인 풍경을 보고 싶어져 밖으로 나왔다. 거리가 강 바로 옆으로 조성되어 있어 거리 밖으로 나오면 바로 단수이 강이 보인다. 강변도로로 강이 둘러싸여 있어 도시와 단절된 느낌이 있는 서울의 한강이나 주요 하천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이다. 강 주위를 둘러보며 잠시 사색에 잠기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쭉 걷다 보면 홍마오청 (紅毛城)의 입구가 나타난다. 영어로는 Fort San Domingo 라고 쓰여 있는데, 대만이 포르모사라는 이름으로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 세워진 요새이다. 중국어 표기로는 단순히 붉은 머리의 백인이 세웠다는 의미만을 가지고 있다. 한국이 서양과의 접촉이 상대적으로 늦어서 한국에서 근대 서양식 건축물을 볼 수 있는 곳이 마땅히 없는 것과는 달리, 일찍부터 서구에 의해 발견된 대만, 일본, 동남아 등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이렇게 붉은 벽돌로 된 오래된 건물들을 볼 수 있는 스팟이 있는 편이다.
건물 한 변으로 다양한 나라의 국기가 걸려있는 것이 보였다. 이 지역을 지배한 국가들의 국기가 걸려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국가를 지배했던 나라의 국기를 버젓이 걸어놓는 것이 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건물 자체가 아름답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러 성을 방문하고 있었다. 이때 나는 부모님을 보내고 혼자이기도 해서 굳이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친구와 혹은 연인과 여행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내심 부럽기도 했다. 혼자 여행하다 보면 사진을 찍는 것은 항상 문제이긴 하다.
내부는 박물관으로 과거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서양식 저택의 느낌이긴 했다. 대만의 더운 기후에 맞춰진 서양식 정원과 붉은 건물이 의외의 아름다움을 자아내던 외부와는 달리 내부는 아주 특별할 건 없어서, 후다닥 보고 홍마오청을 나섰다.
홍마오청 바로 옆에는 진리대학이 위치해 있다. 여기도 캠퍼스가 아름다워서 단수이를 방문하는 사람에게 필수 코스 중 하나이다. 캠퍼스가 안 예쁜 대학을 졸업해서 그런지 멋진 건물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대학의 모습은 항상 나에게 선망의 대상 중 하나이다.
이 대학 캠퍼스에는 옥스퍼드 대학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건물도 하나 있다. 마침 작년에 영국에 방문했을 때 옥스퍼드 다녀왔던 터라 궁금했는데, 아쉽게도(?)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과는 큰 관련은 없는 모양이더라. 아무래도 실제로 학생들이 다니는 대학이다 보니 전시관이 있다던가 한 것은 아니긴 했다.
다음 목적지인 소백궁 (小白宮)으로 향하기 위해 좀더 걸어보았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촬영지로 아주 유명한 담강중학교가 바로 눈 앞으로 지나갔다. 학생 보호를 위해 현재는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는 모양이라, 굳이 들어가보지는 않았다. 영화에서 교정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걸로 만족하기로.
늦게 가서 문 닫기 직전에 방문했던 지라 내부는 짧게 스쳐지나가듯이 구경하고, 건물 외부의 모습에 집중했다. 소백궁이라는 이름답게 건물 전체가 흰 페인트로 덮여 있었다. 홍마오청 입장권으로 들어갈 수 있어서 그런지, 여기서도 많은 사람들이 인생샷을 남기는데 열중이었다.
소백궁 바로 앞에 주차장이 위치해 있는데, 단수이 강을 배경으로 일몰을 보기에도 썩 나쁘지는 않아 보이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사유지이다 보니까 죽치고 있기에는 좀 눈치가 보여서 강가로 내려가보았다.
강가로 내려와 일몰을 감상하면서 단수이 여행의 끝을 볼 수 있었다. 강 건너의 빠리 (八里)도 단수이와 묶어서 자주 여행하는 곳인데, 여기까지 다녀오려면 아마 단수이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야 했을 터.
한개에 NT$15, 대충 600원쯤 하는 팥빵으로 단수이를 떠나고, 대만에서의 셋째날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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