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옥스포드에서 떠날 채비를 하자. 원래는 옥스포드 기차역에서 열차를 타고 그레이트 웨스턴 본선 상의 디드콧 파크웨이 (Didcot Parkway) 역에서 바스 방향으로 열차를 갈아타는 예정이었는데, 앞서 언급했듯이 철교 긴급 보수공사로 열차 운행이 완전히 멈췄던 덕에(?) 버스를 타고 디드콧 파크웨이 역까지 가는 일정이었다. 다행히도 옥스포드 시내에서 바로 가는 버스가 다녔다.
버스는 마을 이곳저곳을 훑고 가다 보니 기차보다는 꽤 느렸고, 덕분에 아침 일찍 옥스포드를 벗어나야 했다. 어느순간 버스는 기차역에 도착했다. 기차를 타기 전에 안에서 먹을 걸 좀 사려고 했는데, 아침 일찍이라 그런지 역의 편의점이 문을 안 열었다. 하는 수 없이 그냥 열차에 올라탔다.
역에 들어가서 미리 구매해둔 티켓을 찍고 플랫폼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행선지 표시가 꽤나 자세히 안내되어 있었고, 우리가 탈 펜잔스행 열차도 안내되고 있었다.
탑승 시간이 다 되었고 열차가 제시간에 도착해서 탑승할 수 있었다. 잉글랜드의 남서쪽 끝 펜잔스까지 가는 기차. 사실 펜잔스가 위치한 콘월 지역이나 그 옆 플리머스가 위치한 데본 지역은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지만, 이번에는 일주일 정도의 짧은 여행이기 때문에 포기하고, 언젠가 꼭 방문해보리라 다짐하고 열차를 탔다.
한국에서, 그리고 미국에서 볼수 없었던 이 열차의 특징은 좌석 표시 옆에 예약 현황이 같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좌석이 지정되지 않은 표를 샀기 때문에 빈 자리에 그냥 앉아야 하는데, 예약등이 녹색이면 계속 좌석이 비어있으니 마음놓고 앉아있으면 되고, 노란색이면 곧 예약자가 탑승하며 빨간색은 자리가 이미 차있다는 뜻이다. 한국 기차에서 입석을 탑승하고 중간중간 자리를 옮겨다녔던 기억이 있었던 나로선 굉장히 편리하다고 느껴졌다.
바스가 다가오자 주택 단지가 슬슬 나타나기 시작한다. 높지 않은 구릉지를 배경으로 2~4층 정도 높이의 공동주택들이 들어서 있는게 무척이나 영국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열차가 바스에 도착하고, 짐을 챙긴 우리는 역을 나섰다. 이날은 부활절 연휴의 일요일, 역시 관광도시 바스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아무것도 못 먹었던 탓에 슬슬 배가 고파져서, 브런치를 먹으러 시내 카페로 향했다.
영국, 특히 잉글랜드에 왔으니 이 화려한 아침식사는 한번쯤은 먹어줘야 한다. 사실 꽤나 칼로리가 있기 때문에 아침식사보다는 브런치와 어울리는 이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아침은 거하게 먹고 오후엔 애프터눈 티라는 이름으로 디저트 섭취 엄청나게 했던 과거 영국 귀족들의 식습관은 참 독특한 듯 하다.
우선 일요일, 부활절 당일이었기 때문에 바스 수도원에서 부활절 예배가 진행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예배에 참석하러 성당으로 가고 있었다. 교회나 성당을 주기적으로 다니지는 않지만 이번에는 일행과 함께 가보기로 하였다.
바스 수도원은 평소에는 관광객들에게 개방하여 입장료를 지불하면 내부를 관람할 수 있지만, 예배가 진행될 때에는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만 입장을 할 수 있으며 따로 입장료를 받지는 않았다. 물론 관광객 모드로 구석구석 둘러볼 수는 없었지만 오랜만에 예배를 드리면서 예배당의 거룩한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바스 수도원에서 나와 다시 동네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Sally Lunn's Eating House라는, 아마 바스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 앞에는 식당에 입장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식당 겸 카페로 운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직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의 배가 덜 꺼지기도 해서 일단은 패스하고 다른 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바스 시내를 흐르는 에이번 강 (River Avon) 쪽으로 가보았다. 에이번이라는 말 자체가 켈트어로 강을 뜻한다나, 덕분에 이 녀석은 영국에 있는 수많은 에이번 강 중 하나이다. 평범한 강처럼 보이지만 여기도 유명한 명물이 하나 있다.
에이번 강으로 나뉜 바스 시내를 이어주는 이 펄트니 다리를 보기 위해서이다. 단순히 다리의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다리의 양옆으로는 상점가가 들어서 있어 상업시설로서의 역할도 하는 건축물이다. 하지만 이 다리가 유명해진 건 바로 영화 레미제라블에 등장한 다리이기 때문. 그런데 사실 영화 안봐서...ㅋㅋ
다리 뿐만 아니라 다리 바로 앞에 물이 떨어지는 포물선 형태의 구조물도 꽤나 인상적이었다. Pulteney Weir 라고 불리는 이 구조물은 홍수를 방지하기 위해 설치된 구조물이라고 한다.
The Pulteney Weir Is the Epitome of English Charm
The stunning horseshoe weir was first built in the early 1600s to prevent flooding in the town of Bath.
www.atlasobscura.com
딱히 뭘 먹거나 쉬고 싶지는 않아서 강 건너로 가보았다. 강 건너에는 산 (혹은 언덕) 이 있어서 바스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좋은 곳이 있기 때문. 물론 꽤나 걸어야 하는 점이 흠이긴 하다.
더 올라가다 보면 운하가 하나 나와서, 여기서 배를 타고 편하게 바스의 경치를 감상할 수도 있다. 좀 경사가 있는 곳에 운하가 설치되었기 때문에, 물을 막았다가 열어주는 식으로 수위를 조절해서 배가 운하를 통행할 수 있도록 하는 모양이다. 파나마 운하의 작동 방식이랑도 유사한듯. 좀 배에 앉아서 쉬고 싶다는 생각도 약간 들었지만, 갈길이 멀기도 해서 이쪽은 후딱 넘어가고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어느새 드넓은 잔디밭이 등장하고, 듬성듬성 자란 나무들 뒤로 교회 첨탑을 비롯한 바스 시내가 보였다. 한쪽에는 크레센트 (crescent) 라고 부르는 초승달 모양으로 주택들을 붙여놓은 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날씨도 나쁘지 않아 잠시 쉬면서 멍하니 있기 좋았다.
좀더 위로 올라가서 바스 대학의 캠퍼스를 걸어도 보고, 또 어떤 골프장 옆에 있는 성벽 모양의 건축물도 보고 하면서 한참을 걸었다. 슬슬 체력이 떨어져서 다시 바스 시내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몇몇 사람들이 성벽의 그늘에 걸터앉아 자연을 만끽하는 그림과 같은 장면들이 보였다. 우리도 좀 쉴까 했는데, 다시 돌아가는 길이 멀어 발걸음을 재촉하여 시내로 돌아갔다.
잠시 맥주를 한잔 하면서 목을 축이다가, 이제 정말로 바스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로만 바스 (The Roman Baths) 에 입장해보기로 했다. 좀더 일찍 들어가면 좋았을 것 같기는 한데, 연휴인지라 현장 티켓을 구매하니 입장 시간이 한참 뒤더라. 계획적으로 여행할 사람들은 아무래도 온라인으로 미리 티켓을 사는 게 나을 것 같다.
입장료가 어느 정도 가격대가 있었고, 일단 입장하면 오디오 가이드는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었다. 고대 목욕탕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보니 방이 여러 곳 있었고, 예전에 사용하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실제로 과거에 쓰였던 목욕탕에는 누런 색의 물이 차있었는데, 야외에 노출되어 있어 물이 더러워진 건지 아니면 원래 이런 물에서 목욕을 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밖에서 물을 끌어오지 않고 지하에서 솟아나는 광천수를 쓰는 모양이었고, 실제로 시설 곳곳에서 물이 공급되고 순환하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었다.
박물관 관람이 끝날 때쯤 로만 바스에 공급되는 물을 실제로 마셔볼 수 있는 시설이 있었다. 뜨뜻미지근한 물을 컵에 조금 따라서 입에 털어넣은 순간, 이건 무슨 맛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에서 끌어온 이 물은 황 냄새가 좀 나서 살짝 비린 맛이 났고, 아무튼 여러 번 마실 만한 그런 건 아니었다.
로만 바스에서 나와서 마지막으로 간 곳은 주택을 붙여 만든 단지인 크레센트 중 가장 유명한 로얄 크레센트. 건물의 총 길이가 200미터 정도나 될 정도로 가로로 긴 건물이다. 이 주택 양식은 특히 바스를 비롯한 영국 쪽에서 볼 수 있는데, 다른 지역에도 있긴 한 모양이다. 수많은 집이 붙어있는 모습이 살짝 기괴하기까지 했다.
저녁으로 한 타파스 바에 들러서 칵테일과 타파스를 먹으면서 바스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끝냈다. 1박을 더 하긴 해야 되는데 다음 날은 다른 지역을 여행하기 때문에 사실상 바스에서의 여행은 끝이다.
'여행 > 유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친구 따라 두번째 영국] 솔즈베리에서 브리스톨 거쳐 카디프까지 (1) | 2024.05.01 |
---|---|
[친구 따라 두번째 영국] 들판 한복판의 돌무더기, 스톤헨지를 찾아서 (1) | 2024.04.29 |
[친구 따라 두번째 영국] 영국의 최고 명문대 옥스포드 대학 탐방 (2) | 2024.04.02 |
[친구 따라 두번째 영국] 영국 옥스포드 근처의 아름다운 대저택, 블레넘 궁전 (1) | 2024.03.23 |
[친구 따라 두번째 영국] 7년 전 못 다 구경한 런던 마저 둘러보기 (2) (1) | 2024.03.14 |
- Total
- Today
- Yesterday
- 남미
- 시애틀
- 시먼딩
- 유카탄
- 이란
- 대만
- 터키여행
- 타이베이
- 예스진지
- 미얀마여행
- 페루
- 키르기스스탄
- 미국여행
- 이란여행
- 실크로드여행
- 실크로드 여행
- 미국비자
- 세계여행
- 실크로드
- 영국여행
- 여행
- 미국유학준비
- 대만여행
- 미얀마
- 터키
- 영국
- 우즈베키스탄
- 미국
- 중국
- 국경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