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따라 두번째 영국] 카디프 근교 케어필리 성 여행과 카디프에서의 여행 마지막 밤 (完)
피쉬 앤 칩스로 점심을 해결한 후, 다시 열차를 타러 카디프 센트럴 역으로 왔다. 슬슬 비가 오기 시작해서 우산을 쓰고 돌아다녔다. 이번에 탈 열차는 웨일스 지역의 로컬 교통을 담당하는 Transport for Wales (웨일스어: Trafnidiaeth Cymru) 라는 회사의 열차를 이용했다. 전철화도 안되어있는 지방 노선이지만 그래도 매일 열차가 길지 않은 간격으로 다니고 있었다. 미국이었다면 이 정도의 이동은 차가 없으면 불가능에 가까웠을 텐데... 유럽 국가들은 이런 점이 참 부럽다.
열차에 탑승했다. 아무튼 웨일스에 왔다 보니 여기는 지명도 웨일스어로 되어있는 경우가 많더라. 덕분에 알파벳을 휘갈겨 놓은듯한 낯선 이름들을 가진 행선지를 잔뜩 보면서 살짝 위압감을 느끼기도 했다. 다행히 요즘은 구글지도가 아주 잘 돼있어서 지도 앱이 알려주는 행선지만 잘 보고 타면 문제가 없긴 한데, 카디프 주변에서도 노선이 여러 곳으로 분기되기 때문에 확인은 똑바로 해야 한다.
열차 내부는 그래도 깔끔하고, 와이파이도 작동하고 있었다. 낮시간이어서 그런가, 탑승객이 많지는 않아서 원하는 곳에 앉을 수 있었다. Ystrad Mynach라는 곳까지 운행하는 열차를 타고 15-20분 정도 가서 케어필리 역에 도착했다.
역에 도착했다. 역사가 아주 작고 아담한 간이역 수준의 작은 기차역이었다. 천천히 구경하면서 성까지 가고 싶었으나 하필 비가 꽤 내리고 있었고, 일단 성부터 둘러보기로 결정했다.
마치 시골 읍내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높은 건물도 없고, 한두 층짜리 집들이 모여서 시내를 형성했다. 위키백과를 찾아보니 인구 4만 명정도의 소도시이더라. 그래도, 케어필리 역부터 성까지 가는 길이 좁고 상가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으니 사람 사는 느낌은 좀 났다. 역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성 입구가 나온다. 걷는 게 귀찮으면 역에서 성까지 가는 버스가 수시로 다니고, 심지어 한시간에 한대꼴로 카디프에서 케어필리 성 앞으로 가는 버스도 있는 모양이긴 한데, 가격도 안 저렴하고 소요시간도 열차보다 더 걸리기 때문에 비추.
케어필리 성이 보이는 곳으로. 카디프 성에 비해서는 화려하고 웅장한 느낌은 덜하지만, 윗부분이 살짝 파괴된 채로 복원이 안되어있는 것을 보니 오히려 더 중세시대 성 유적에 방문한 기분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 바로 성으로 들어갈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이쪽은 정식 출입구가 아닌 모양. 성벽을 따라 빙 돌아서 성의 동쪽에 위치한 입구로 향했다.
아무튼간 케어필리 성의 제대로 된 입구를 찾아 들어갔다. 여기서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가면 된다. 멀리 성벽이 무너져있는 모양이 꽤나 신기했다. 조금만 건드려도 더욱 무너질 것만 같았다.
국기에도 드래곤이 그려져 있는 웨일스 아니랄까봐, 성 내부에 드래곤 가족 조형물이 있었다. 한쪽에는 기사가 성벽을 받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는 이벤트 덕분에 정말로 무슨 게임의 던전에 들어온 것과 같은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거나 하지는 않은 곳인데, 그 덕분에 조금 더 자유롭게 성의 테마를 정할 수 있었나보다. 바깥쪽의 분위기를 느끼고 성 내부로 들어가보았다.
다른 유럽의 성마냥 화려하진 않았지만, 오히려 투박함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작위적인 느낌이 좀 덜 하다고 표현해야 하나? 내부에는 아이들이 체험학습을 하도록 자리가 마련된 곳도 있었는데, 확실히 공간을 좀더 자유롭게 활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좀더 성 곳곳을 둘러보았다. 이끼가 키고 덩굴이 자란 성벽의 모습이 정말 폐허가 된 버려진 성을 탐사하는 느낌을 주어 성을 둘러보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 게다가 비가 오고 안개가 끼어 미지의 공간을 탐사하는 긴장감이 배가되는 경험을 했다.
마냥 버려진 성은 아닌게, 곳곳에 이런 그림도 걸려있고 그렇긴 하다.
성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해자 너머로 케어필리 시내를 내다보았다. 시골 읍내 정도 크기의 시내이다 보니 웅장한 스카이라인이 형성되어 있지는 않고, 낮은 집들이 멀리까지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주택들의 모습에 구름과 안개가 정말 "여기는 영국이다"라고 내 귀에다 소리치는 것만 같았다.
성 관람을 마치고 나섰다. 마음같아서는 좀더 케어필리 시내를 둘러보고 돌아가고 싶었는데, 열차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비도 온지라 피곤해져서 그냥 바로 열차를 타고 카디프로 돌아갔다. 복귀하는 열차에서 쪽잠을 자면서 잠시 방전된 체력을 보충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카디프의 모습들을 눈으로 담으며 시내 구경을 좀 하다가, 한번 시장에 가보기로 했다. 여기도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전통시장이 있더라. 보통은 한끼 때우러 가기 좋지만, 점심으로 먹었던 피쉬 앤 칩스가 양이 제법 많았던 지라 이번에는 구경만 해보기로.
내부에 들어가봤더니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는 않아서, 잠깐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내 기억에는 과일만 몇개 사서 2층의 테이블에 걸터앉아 잠깐 쉬다 갔던 듯. 나중에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잔뜩 배가 고플 때 가봐야겠다.
전통시장은 규모가 크지 않았지만, 주변에 아케이드 상점가가 대규모로 있어서 그쪽도 가봤다. 고급진 분위기가 물씬 느껴져서 우리같은 가난한 여행자를 반기지 않는 것도 같았지만, 아무튼 눈치 같은 거 안 보고 돌아다녀보았다. 이쪽에 위스키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판매점이 있길래 들어가서, 펜데린 (Penderyn) 이라는 웨일스 위스키를 한병 사보았다. 병은 그래도 예쁘게 생겼고 맛도 무난했으나, 나중에 보니 히드로 공항 면세점에서 거의 반값에 팔고 있더라... 영국에서 위스키를 구매하려고 한다면 웬만하면 공항에서 사는 걸로 하자.
슬슬 저녁시간이 되었다. 고급진 저녁을 먹을까 하다가, 영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인만큼 영국적인 걸 한번만 더 먹고 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결정한 것은 바로 미트파이. 악명 높은 영국 요리이지만 그래도 궁금하긴 한걸. 마침 파이미니스터 Pieminister 라는 미트파이 체인점이 있길래 들어가보았다. 왠지 한국 블로그에서는 맨체스터 맛집으로 알려진 모양인데, 잉글랜드와 웨일스 쪽에서 영업하는 전국 체인이니 그냥 가까운 데 가도 괜찮을듯?
칵테일을 한잔 가격으로 두잔을 준다고 써놓아서, 같은 걸로 두잔을 주문했다. 그리고 대망의 미트파이도 각자 하나씩 사이드와 함께 주문했다. 접시에 담긴 음식의 모습에서 보이다시피 그렇게 크기가 큰 파이는 아니긴 하다. 그래도 사이드, 칵테일과 함께 먹으면 배는 조금 차는 정도.
카디프 역에서 남쪽으로 좀 가면 바닷가와 항구가 나온다. 카디프 베이라고 불리는 지역인데, 한번 그쪽을 마지막으로 방문해보았다.
이쪽에는 머메이드 키 (Mermaid Quay) 라는 쇼핑몰이 있었다. 가보려고 했는데 늦은 시간이라 을씨년스러워서 겉으로만 훑어보고 지나갔다.
카디프 베이에는 광활한 타원형의 광장이 있다. 카디프 출신의 유명한 작가인 로얼드 달을 기념하기 위해 '로얼드 달 광장 (Roald Dahl Plass)' 라는 이름을 가진 곳에 서보았더니, 멋진 건물들이 사방으로 위치하고 있어 사진을 남기고 숙소로 복귀할 수 있었다.
돌아가는 길은 비싼 열차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마침 카디프에서 히드로 공항을 경유하여 런던으로 가는 버스가 있었고, 이걸 타고 편안하게 바로 공항으로 갈 수 있었다.
영국에 갈때 영국항공을 이용했던 것과는 달리 돌아올 때는 아메리칸항공의 비행기였다. A380이 아닌 중대형 비행기인 B787이었는데... 앞에 모니터도 고장났던 380보다는 훨씬 나았던 것 같다. 아무튼 이렇게 여행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